Silent

# 85

by 더블윤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Observer


코라의 복도에는 낮은 조도의 조명만이 깔려 있었고, 그 아래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딜런은 앞서 걷는 네 명의 무장 인원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통신실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고, 헬멧 안에서 새어 나오는 숨소리조차 이 공간에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코라 내부는 마치 모든 소리를 삼켜버린 것처럼 지나치게 정적이었다.

딜런은 손목 단말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노라에게서 받은 메시지가 아직도 화면에 떠 있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즉시 철수하세요.'


“이상하군요.”

딜런이 최대한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너무 조용해요.”


바로 뒤에 있던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체 반응이 전혀 안 잡힙니다.”

그는 손목 단말을 확인하며 덧붙였다.

“이 정도 규모의 함선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딜런도 같은 생각이었다. 휴대용 생체 스캐너의 화면은 텅 비어 있었다. 박동, 체온, 미세 움직임. 그 어떤 신호도 포착되지 않았다. 이 구역 전체가 비워진 껍데기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복도 끝의 교차 지점에서 걸음을 늦췄다.

그리고 그 순간, 생체 스캐너 화면에 붉은 점들이 떠올랐다. 딜런과 요원들은 동시에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화면 속 붉은 점들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곧이어 통로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금속 부츠가 바닥을 때리는 둔탁한 소리, 짧고 명령조의 외침. 잠깐 스쳐 보인 장면만으로도 상황은 명확했다. 중무장한 군인들이 코라의 승무원들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손이 묶인 사람들, 겁에 질린 얼굴들, 끌려가듯 이동하는 무리. 그 끝에는 격납고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 표시가 붉게 점등되어 있었다.


“승무원들을… 격납고로 데려가고 있군요.”

딜런이 숨죽인 채 중얼거렸다.


그때, 또 다른 붉은 점이 스캐너 화면에 나타났다.

이번엔 뒤쪽이었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뒤에서도 접근 중입니다.”

앞에 있던 요원이 짧게 속삭였다.


딜런은 재빨리 주변을 훑었다. 막다른 통로였다. 왼쪽은 벽, 오른쪽은 굳게 닫힌 출입문. 이대로라면 곧 들킬 수밖에 없었다. 군인들의 실루엣이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그 순간, 오른쪽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딜런은 반사적으로 총을 들어 올렸지만, 문틈 사이로 내밀어진 손이 급히 손짓했다.


“빨리… 이쪽으로.”

낮고, 익숙한 목소리였다.


딜런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멎는 듯했다. 그는 주저 없이 손짓해 팀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문이 닫히자, 외부의 소음은 거짓말처럼 차단되었다. 어둡고 좁은 공간. 비상 조명 하나만이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딜런은 숨을 고르고 고개를 들었다.

“… 누나?”


그 앞에 서 있던 여자는 풍성한 곱슬머리 아래로 짧게 웃었다. 피로가 짙게 내려앉은 얼굴이었지만, 그 미소만은 분명했다.


“무사했구나, 딜런.”

블레어였다.


블레어의 얼굴은 눈에 띄게 지쳐 있었고, 눈빛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딜런은 반가움에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그녀는 곧바로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둘은 잠시 그대로 서서, 문 너머의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마침내 주변이 잠잠해지자, 블레어는 딜런을 바라보며 낮게 물었다.


“노라는 무사해?”


딜런은 잠시 멈칫하다가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노라는… 칼리뮤 씨를 구하러 갔어.”


그 말에 블레어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나 이내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다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계획은?”


“통신실로 갈 거야.”

딜런이 주머니에서 작은 저장 장치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이 안에 있는 자료를 화성 전역에 전송해야 해.”


블레어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길을 안내할게. 나도 몰래 빠져나온 입장이라, 최대한 조용히 움직여야 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딜런이 물었다.


블레어는 목소리를 극도로 낮춘 채 대답했다.

“로쉬의 명령으로 코라의 승무원들 전부를 화성으로 이송 중이야. 이송이 끝나면, 여기 있던 군인들도 전부 루나포트로 이동할 거래.”


딜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전부? 코라를 비우겠다는 거야?”


블레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여러 척의 대형 수송선이 출발했어.”


딜런은 짧게 생각에 잠겼다. 승무원 이송. 텅 빈 내부. 생체 신호의 공백.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기회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통신실까지 안전한 경로를 안내해 줘, 누나.”

그가 블레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블레어는 짧게 숨을 들이쉰 뒤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다시 열렸다. 복도는 여전히 조용했다. 너무도 조용해서, 오히려 불길할 정도로.

딜런은 그 적막 속으로 다시 발을 내디뎠다.






온통 새하얀 강철로 둘러싸인 차가운 격실 안. 한쪽 구석에 설치된 CCTV 카메라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칼리뮤는 벽에 몸을 붙인 채 웅크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노매드에서 내리기 전, 그녀는 엔진 하부에 코어리움 반물질 폭탄을 숨겨 두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래 숨겨질 수 없으리라는 것쯤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노라의 일행은 코라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화성으로 향했을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칼리뮤는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절망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절망의 바닥을 뚫고, 무언가가 그녀의 감각을 스쳤다.


“… 노라.”

칼리뮤가 고개를 들어 중얼거렸다.


그가 아주 가까이 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심장 박동이, 마치 이전처럼 다시 한번 그녀에게 전해지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격실의 스피커를 통해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칼리뮤. 나예요. 소피.”


너무 놀란 칼리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곧이어 소피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해요.”


칼리뮤는 다시 몸을 웅크린 채 움직임을 멈췄다.

잠시 후, 소피의 음성이 다시 이어졌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지금 코라의 내부 시스템 일부에 접근했어요. 하지만 방화벽 때문에 오래 유지되진 않을 거예요. 코라가 눈치채지 못하게 CCTV에는 가짜 영상을 덧씌울게요. 대신… 빨리 움직여야 해요.”


“… 노라는?”

칼리뮤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조용히 물었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소피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라는… 지금 함장실에 있어요. 하지만, 그에게 가지 마세요. 노라는 당신이 이곳을 벗어나길 원해요. 동료들과 함께, 반드시 탈출하세요.”


“하지만—”

“지금이에요. 움직여요, 칼리뮤.”


그 말을 끝으로 스피커에서는 잡음 섞인 소리만 남았다가, 곧 완전히 꺼졌다. 이어서 격실 문 너머에서 철컥하는 소리가 울렸다.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였다.

칼리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문 앞으로 다가갔다. 잠겨 있어야 할 문은, 아무런 저항 없이 스르르 열렸다.


격실 구석의 CCTV 카메라는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분명히 포착했다. 그러나 송출되고 있는 영상 속에는 여전히 구석에서 웅크린 채 앉아 있는 칼리뮤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