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kind

# 88

by 더블윤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Observer


루나포트 상황실 내부. 거대한 홀로그램 지도 위로 화성과 지구의 궤도가 겹쳐 떠 있었고, 인원들은 MCD(Mars Class Destroyer)의 첫 실전 성공을 확인하며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기에는 승리 직후의 팽팽한 긴장과 묘한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그때, 암호화된 통신기에 짧은 전문이 떠올랐다.


‘반격 실시. 공격 원점 및 식별된 지휘부 타격.’


통신병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문을 상황장교에게 전달했다.


“다음 목표 좌표를 MCD에 전송해. 식별된 사일로들과 지구의 자녀 지휘부를 타격한다.”

상황장교가 즉시 명령을 내렸다.


상황실 안이 곧바로 분주해졌다. 좌표 입력, 인증 코드 전송, 무기 시스템 활성화.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지우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절차를 수행할 뿐이었다.




루나포트 고궤도에 정박해 있던 MCD. 거대한 선체 내부에서 고출력 레이저 포대가 낮은 굉음을 내며 예열을 시작했다. 진동이 선체 전체를 타고 퍼졌고, 세 문의 초대형 레이저 포대가 천천히 같은 방향으로 정렬되었다.

포신은 점점 지구를 향해 돌아갔다. 몇 초의 정적 뒤, 붉게 응축된 빛이 발사되었다. 세 갈래의 레이저 빔이 하나로 합쳐지며 대기권을 찢고 내려갔다. 붉은 광선 주변으로 구름이 밀려나며 길이 열렸고, 빛줄기는 지표에 닿는 순간 거대한 불기둥을 일으켰다. 대지는 갈라졌고, 숨겨져 있던 지구의 자녀 사일로 하나가 연쇄 폭발과 함께 사라졌다.




“아시아 대륙 사일로 제거 확인.”

상황실의 병사가 보고했다.

“다음 목표를 요청합니다.”


상황실의 지휘관은 홀로그램 지도 위에 떠오른 붉은 점 하나를 가리켰다.

“오세아니아.”

그가 말했다.

“숨겨진 지휘부 위치가 확인됐다. 그곳을 제거해.”




오세아니아 대륙의 지하 깊숙한 곳, 에그리나 지휘소. 경고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엘렌의 부관이 다급히 외쳤다.


“엘렌! 대피해야 합니다! 위치가 노출됐어요! 곧 포격이 떨어질 겁니다!”


엘렌은 잠시 말을 잃은 채 서 있었다. 공허한 눈빛 속에 체념이 스쳤다.


“… 어디로?”

그녀가 낮게 물었다.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가야 하나요…?”




MCD의 주포가 다시 미세하게 방향을 조정했다.

예열음이 다시 한번 울리려는 순간, 웅웅 거리던 소리가 갑자기 끊겼다. 포신이 멈췄고, 곧 전혀 다른 방향으로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MCD 통제 불가!”

상황병의 외침이 상황실을 갈랐다.


“뭐가 문제인가?!”

지휘관이 소리쳤다.


“통제 권한이 사라졌습니다! 무인화 프로그램의 핵심 코드가 변경된 것 같습니다!”


상황병의 말이 끝나자 지휘관은 책상을 내리치며 이를 갈았다. 항상 함선의 무인화 설계에 반대하던 그는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 진작에 예상하고 있었다.

“젠장… 해킹인가?”


“아닙니다…”

상황병이 빠르게 스크롤되는 화면을 보며 말했다.

“통제 권한자는 여전히 GU 소속입니다.”


“… 누구?”

지휘관이 물었다.


상황병은 침을 삼킨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베할라 로쉬 장관입니다. 루나포트의 모든 무인화 모듈 통제 권한이… 그분 한 명에게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전부 삭제되었습니다.”




적막한 우주 공간. MCD는 한참 동안 포신을 회전시키더니, 마침내 새로운 목표를 향해 정렬을 마쳤다. 포신 끝에 놓인 것은 새하얀 백색 기지, 루나포트였다.

어떤 경고도, 사전 통보도 없었다. 붉은 광선이 발사되었다. 검은 우주를 가로지른 빛은 루나포트의 최상부를 정확히 관통했다. 상황실이 위치한 구역이었다.

백색의 파편들이 진공 속으로 흩어졌고, 그와 동시에 통신 채널에는 끊어지는 비명과 잡음이 뒤섞여 퍼져나갔다.






Boy's


자리에서 일어난 로쉬는 천천히 함장실 구석에 놓인 캐비닛으로 다가갔다.


“자네가 칼리뮤를 구한다는 감정적인 선택을 했다면, 신인류 프로젝트의 정당성은 확보될 수 있었네. 감정이 인류의 생존에 위협적인 변수라는 사실이 명확해지는 셈이었으니까.”

그는 캐비닛 문을 열며 말했다. 그 안에는 커다란 철제 상자가 들어 있었다.


“반면에 칼리뮤를 제거하고 인류 문명을 보존하는 선택을 했더라도, 신인류 프로젝트는 충분한 지지자를 확보할 수 있었지. 이성의 논리가 여전히 감정보다 우위에 있다는 증거가 되니까.”

그는 철제 상자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결국 무엇을 선택하든, 당신은 당신의 계획을 진행시킬 생각이었군요.”

내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저 당신의 행위 안에 ‘인간의 확인’을 담고 싶었을 뿐이죠. 인류를 통치할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


로쉬는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완벽한 계산이었지.”


“하지만 당신은 결국 인간의 확인을 받지 못했어요.”

내가 말했다.

“당신 논리대로라면, 당신의 계획은 이미 자격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철제 상자에 붙어 있는 패널에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상자는 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를 냈다.


“인간은 기회를 잃었어.”

그가 말했다.


“그만 알 수 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칼리뮤와 그녀의 동료들을 풀어줘요.”

내가 쏘아붙였다.


“나는 어떻게든 인류 문명 안에 인간을 담아두려 노력했지.”

그는 철제 상자 안에서 팔뚝만 한 크기의 캡슐을 꺼내 들며 말했다. 항상 칼리뮤가 지니고 다니던 코어리움 캡슐, 반물질 폭탄이었다.


“하지만 결국 자네는 선택했어.”

그가 말을 이었다.

“인간은 끝까지 비효율적인 생명체로 남아, 스스로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로 남겠다고 말이야.”


그는 코어리움 캡슐 중앙의 다이얼을 천천히 돌렸다. 캡슐의 중심부가 열리며, 푸른빛을 내뿜는 코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이끌어야 할 인간이 없다면, 나는 더 이상 인간의 확인을 필요로 하지 않아."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인류는 인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류란 인간이 만든 문명이 유지되는 시스템이지."


“그러니 나는, ‘더 나은 인류를 위해.’”

로쉬가 낮게 말했다.


“모든 인간을 제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