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riable3

# 94

by 더블윤


Observer


고스트쉽은 코라의 외곽을 벗어나며 점점 속도를 높였다. 창 너머로 보이는 코라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점처럼 멀어지고 있었다.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을 일들을, 이 작은 선체는 더 이상 감지하지 못했다.
조종실에는 최소한의 조명만이 켜져 있었다. 네리안 승무원들은 각자의 좌석에 조용히 앉아 있었고, 그들 사이에 인간인 블레어가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에는 공포나 안도보다는 불안과 걱정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멀어져 가는 코라가 지나간 항적을 따라 머물러 있었다.
네리안의 선장은 그 모습을 힐끗 바라본 뒤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이제 그의 눈에는 조용히 계기판을 바라보며 대화를 주고받는 인간 조종사들이 들어왔다. 그는 그들 너머로 보이는 선내의 각종 계기들을 유심히 살폈다.
고스트쉽에 적용된 기술은 네리안인 그가 보아도 충분히 진보된 수준이었다. UI는 여전히 네리안 기술에 비하면 다소 뒤처져 있었지만, 인간의 기술력이 네리안 문명을 위협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네리안 지도부가 내린 인류 문명 견제 지시는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처럼 느껴졌다.
그는 다시 옆에 앉은 블레어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그녀의 표정에는 여전히 초조함이 스쳐 지나갔다. 위협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왜 그렇게 자꾸 훔쳐봐요?”
블레어가 창밖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선장은 순간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블레어가 네리안 선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빛에는 알 수 없는 불만이 섞여 있었다.

“정말로 우리말이 유창하네요. 정말… 겉보기엔 영락없는 인간인데…”
블레어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우린 당신네들과 다르죠.”
선장은 그녀의 관찰하는 듯한 시선을 피하려는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정확히 뭐가 다르죠?”
블레어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선장은 잠시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우리 문명이 더 우월합니다.’
그 말을 하려다 멈춘 것이다. 그 자신조차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린 무엇이 다른 거지?'
'우리 문명은 정말 인간들보다 우월한 문명일까?'

그의 사고 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기술적으로 우월하다고 믿어왔던 그들은, 인간의 기술에 포착되어 꼼짝없이 죽을 위험에 처했었다. 그리고 그들이 아직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이유는, 야만적이라 여겨왔던 인간의 도움 덕분이었다.

“왜 우리를 돕는 겁니까?”
네리안 선장이 물었다.

블레어는 한숨을 내쉬며 좌석 등받이에 몸을 맡겼다.
“저는 별로 당신들을 돕고 싶은 마음 없었어요. 처음부터요.”

“그럼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기에 우리를 도운 겁니까?”
선장이 다시 물었다.

블레어는 답답하다는 듯 그를 한 번 흘겨보았다.
“당신네들은 항상 뭐, 거창한 이유라도 있어야 움직이나 보죠?”
그녀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이봐요. 사람은 원래 이득 같은 거 없어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요. 노라도, 내 동생 딜런도, 그리고 칼리뮤라는 당신네 동료도… 모두 그저 누군가를 지키고 싶어서 그렇게 한 거예요.”
그리고 다시 눈을 감은 채 의자에 기대며 중얼거렸다.
“이런 한심한 대화를 나눌 바엔, 나도 저기에 남았어야 했는데…”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 칼리뮤가…?”
블레어의 무관심한 태도와는 달리, 선장은 그녀의 말을 곱씹듯 되뇌었다.

그의 종족은 감정을 억제하도록 훈련받아왔다. 판단을 흐리는 요소는 제거하고, 효율과 생존만을 남긴 존재들. 그는 그 사실을 오랫동안 자부심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지금, 그 확신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칼리뮤.

선장의 사고 속에 그녀의 이름이 떠올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임무에 충실한 전사였다. 계산된 위험, 최소한의 손실, 명확한 목적.
그러나 지금의 칼리뮤는 달랐다. 그녀는 인간을 선택했다. 효율이 아닌 존재를, 결과가 아닌 관계를.
선장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떨림은 없었다. 심박도 안정적이었다. 생체 반응만 놓고 본다면, 그는 여전히 완벽하게 ‘네리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고는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수많은 문명을 지나왔다. 비효율적인 문명은 제거했고,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종은 사전에 정리했다. 그것이 질서였고, 그것이 생존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달랐다. 이들은 비효율적이었고, 감정에 휘둘렸으며, 스스로를 파괴할 만큼 어리석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구했고, 타자를 선택했고, 계산되지 않은 희생을 감수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블레어를 다시 바라보았다. 인간이라는 종은 어리석고, 감정에 쉽게 휘둘렸으며, 약했다. 그러나 그 약함 속에서 네리안들이 결코 만들어내지 못한 변화가 태어나고 있었다.
선장은 코라에서 탈출하기 전에 되찾은 장거리 송신기를 꺼냈다. 함선의 통신 시스템이 없는 지금, 그것으로 벨시안과 직접 교신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암호화되지 않은 메시지를 송신해 인간들의 전파 중계 장비들을 경유한다면, 태양계 밖까지 신호를 전달할 가능성은 남아 있었다.
그는 송신기의 전원을 켜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코라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곳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있었다.
선장은 송신기의 출력을 조정한 뒤, 그것을 입가로 가져갔다. 처음에는 네리안어로 송신하려다 멈췄고, 무심코 블레어를 한 번 바라보았다. 블레어는 한쪽 눈을 뜬 채 그를 보고 있었다. 선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송신기를 입에 갖다 댄 후 말했다.

“W-81 항성계에서 벨시안으로 보내는 전문이다.”
그의 입에서 네리안어가 아닌 인간의 언어가 흘러나왔다. 이 전문이 네리안만이 아니라, 이 공간에 있는 인간에게도 닿기를 바라는 듯했다.

“우리의 W-81 항성계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코어리움 제거와, 인류 문명을 견제하기로 했던 임무는—”
그 대목에서 블레어는 무심히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세웠다. 그녀의 눈이 커졌고, 시선은 선장의 입술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현장 지휘관 판단하에,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선장은 숨을 고르듯 짧은 정적을 두었다.

“이곳에서 직접 겪어본 인간종은, 우리의 기존 판단과는 달랐다.”
그의 시선이 잠시 조종실을 훑었다.
“그들은 결코 야만적이지도 않았고, 파괴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 존재도 아니었다.”

블레어의 손이 무릎 위에서 살짝 움찔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숨결이 미세하게 빨라졌다.

“그들은 우리와 같았으며, 어쩌면 우리보다도 더 나은 문명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선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이전에는 없던 미묘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마치 결론을 다지듯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와 달리, 그들이 지키고 있는 ‘감정’이라는 요소는…”
그 단어에서 그는 아주 잠깐 고개를 숙였다.
“위기에 처한 우리를 구해주었고, 동시에 놀라운 변화의 힘을 지니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는 이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블레어와 시선을 마주쳤다. 블레어의 눈을 응시한 채, 그는 말을 이었다.
“고로, 나와 내 팀원은 인류를 향한 어떠한 적대 행위도 하지 않을 것이며, 네리안 문명이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제안한다.”

“이상.”
그 말을 끝으로 선장은 송신기에서 입을 떼고, 손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조종실 안에는 잠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창 너머로는 여전히 우주가 흐르고 있었고, 고스트쉽은 묵묵히 항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결정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하나의 문명이 다른 문명을 제거 대상이 아닌, 대화의 상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