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격납고는 고요했다. 거대한 공간을 채우고 있어야 할 기계음과 작업 신호는 대부분 꺼져 있었고, 천장 레일에 매달린 작업용 조명만이 간헐적으로 깜빡이며 바닥에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붉은 경고등이 벽면을 타고 흐르듯 점멸했고, 그 사이사이로 네리안 함선의 유선형 선체가 낮은 숨을 쉬듯 미세한 진동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폭탄을 내려놓지 않은 채, 그 공간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코어리움 반물질 폭탄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아니, 어쩌면 무게를 느끼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거운 건 언제나 물질이 아니라 선택이었으니 말이다.
노라는 노매드 앞에 서 있었다. 노매드의 캐노피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시선에서, 지금 그가 나와 같은 고뇌를 품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딜런은 그 옆에서 말없이 서 있었다. 평소라면 상황을 정리하고 판단을 재촉했을 그조차, 지금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노라.”
내 담담한 목소리가 격납고 안에 퍼졌다. 너무 크게 울린 것 같아,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딜런과 함께 지구로 돌아가요.”
노라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니—”
“아니요.”
나는 그의 말을 잘랐다. 이번만큼은, 설득이 아니라 전달이어야만 했다.
“그냥 듣기만 해 줘요. 노매드로는 제 시간 안에 안전거리 밖으로 나갈 수 없어요. 네리안 함선은… 아직 가능해요. 그리고 그걸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은 여기서 나뿐이에요.”
노라는 한 걸음 다가왔다. 마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결론을 밀어내고 싶다는 듯이.
“그럼 같이 가요.”
“그건 안 돼요.”
이번에는 조금 더 단호하게 말했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단단히 굳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이미 지나왔다는 확신이었다.
“당신은 이 세상에 남아야만 해요. 그리고...”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를 똑바로 바라보는 게 쉽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이 세상에서… 꼭 행복하길 바래요.”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가슴 안쪽에서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눈물이 고이는 걸 느꼈다. 애써 고개를 들고, 숨을 삼켰다.
꼴사납기는...
“안 돼요…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내 목소리는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숨이 가쁘게 끊어졌고, 말끝마다 떨림이 매달려 있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할 거라는 걸,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견딜 수가 없었다. 예상했던 비극은, 준비했다고 해서 덜 아픈 게 아니었다.
“약속했잖아요.”
나는 거의 애원하듯 말을 이었다.
“다시 돌아오겠다고… 우리, 분명 그렇게 말했잖아요.”
칼리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내 가슴을 더 세게 조여 왔다. 나는 한 걸음 더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억지로라도 붙들어 두고 싶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체온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어서 더 괴로웠다.
“칼리뮤… 제발.”
목이 메어 더 이상 크게 말할 수 없었다.
“포기하지 말아요. 분명… 아직 방법이 있을 거예요. 우리가 아직 못 찾았을 뿐이에요.”
그녀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아주 잠깐, 정말 찰나였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 흔들림에 매달리고 싶었다.
“미안해요, 노라.”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고, 지나치게 차분했다. 그래서 더 잔인했다.
“하지만… 방법은 이것뿐이에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말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안 돼요….”
숨이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당신을 혼자 보낼 순 없어요.”
말이 끝나지 않았다. 끝낼 수 없었다. 그 문장의 끝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공백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노라.”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젠 시간이 없어요. 나를 보내줘야만 해요.”
그녀는 내 손을 천천히 떼어냈다.
그 단호함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분노도, 논리도, 희망도 모두 무력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니요. 같이 가요.”
나는 다시 말했다. 이번엔 낮고, 거의 속삭이듯, 하지만 더욱 단호하게.
“끝까지 함께할 거예요. 아직…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가 그렇게 나올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아마도 내가 그를 설득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새어 나오려는 눈물을 억누르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깊은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지만, 시선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 정말 고집불통이네요.”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노라의 눈이 커졌다. 그 안에 아주 잠깐, 믿기지 않는다는 빛이 스쳤다.
“그러면…”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같이 가는 거죠...?”
나는 잠시 침을 삼켰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노라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마치 긴 악몽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어깨의 힘을 풀었다. 그가 잠시 고개를 숙인 틈을 타, 나는 딜런을 바라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딜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잠시 후 내 의중을 알아챈 듯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몸을 돌려 은은한 푸른 광택을 내고 있는 함선으로 다가갔다. 문양에 손을 대자 매끄러운 외피에 균열이 생기더니 출입문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쉭— 하는 짧은소리와 함께 문이 옆으로 이동하며 어두운 선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라가 조심스럽게 선내로 들어서려 하자, 나는 그를 불러 세웠다.
“잠시만요, 노라. 생체 스캐너가 있어서 제가 먼저 들어가야 해요.”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 금방 해제할 테니, 잠깐만 기다려요.”
그리고 등을 돌렸다.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유지한 채, 천천히 출입문 안으로 들어섰다. 문 옆 패널에 손을 갖다 대는 순간,
함선의 긴급 차단 시스템이 작동했다.
노라와 나 사이에, 투명한 차단벽이 빠르게 내려왔다.
놀란 노라는 나를 향해 달려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몇 걸음도 채 가지 못해, 투명한 벽 앞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마치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채 보이지 않는 경계를 손으로 더듬었다.
“잠깐…!”
그의 손바닥이 벽을 세게 두드렸다.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칼리뮤! 칼리뮤!”
나는 그와 나 사이에 내려온 벽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벽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마치 그의 손을 맞잡으려는 것처럼.
“미안해요…”
내 목소리는 끝까지 가지 못하고 부서졌다. 거의 흐느낌에 가까웠다.
“칼리뮤, 안 돼요! 이거 열어요!”
노라는 벽을 다시 두드리며 외쳤다.
“지금 당장 열어요! 같이 가기로 했잖아요!”
그의 절규가 투명한 벽을 타고 전해졌다.
나는 고개를 떨궜다가 다시 들어 올리며 딜런을 바라보았다.
“딜런… 노라를 데리고 지구로 돌아가 줘요. 부탁이에요.”
딜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한 번 바라본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조심스럽게 노라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노라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고정돼 있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당신과 함께해야 해요…”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가슴 위에 한 손을 올렸다. 심장이 있는 자리였다.
“이미… 우린 함께 있어요.”
그리고 한번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사랑해요, 노라.”
복받쳐오는 감정을 억누르며 가능한 한 또렷하게 말했다.
“당신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사랑할 거예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등을 돌렸다.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 이름을, 몇 번이고 애타게 부르는 소리였다.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그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참아야만 했다.
그를 위해서 그래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