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지구에 도착한 나는, 에그리나 지하에 있는 칼리뮤와 내가 한동안 머물렀던 집의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낯설게 느껴질 만큼, 이곳은 오래 비워져 있었다.
안은 떠난 그날의 시간이 그대로 멈춰 있는 듯 보였다. 개지 않은 이불, 정리되지 않은 침대. 그리고 그녀와 내가 잠시 머물렀던 흔적들.
나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옷걸이에 걸린 외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손을 뻗었다가, 외투 주머니에 꽂혀 있는 작은 봉투를 발견했다.
봉투를 꺼내 조심스럽게 펼쳤다. 칼리뮤의 글씨였다.
그대 내게 별이 되어
나의 노래를 들어줘요
해가 진 어두운 밤에, 나는 그대를 만났죠
어둠 속에 헤매일 때, 그대는 내게 노래를 불러줬어요
내가 슬픔 속에 잠겨 있자, 그댄 내 손을 잡았죠
내가 그대를 볼 수 없어도
그대가 나를 볼 수 없어도
이젠 그대를 느낄 수 있어요
그대 내게 별이 되어
내게 노래를 들려줘요
그대는 가장 찬란한 나의 별
그대는 가장 빛나는 나의 빛
별의 노래를 들려주세요
별의 노래를 들어주세요
분명 그녀가 내게 남긴 편지이자, 그녀의 마지막 시였다.
"한결같이... 직설적이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처음 읽는 시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예전, 내가 그녀에게 불러주었던 노래. 그녀의 시는 그때의 멜로디와 호흡을 닮아 있었다. 이건 결국, 그녀가 나에게 건네는 노래였다.
편지지에는 희미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말라버린 자국 위로 잉크가 조금 번져 있었다.
그 자국 위로 또 하나의 눈물이 떨어졌다.
그것에, 겹치듯.
아니면, 더하듯.
나는 시를 다시 접어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창가로 걸어갔다.
에그리나의 자연 채광구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태양은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잠시 후면 어둠이 이 공간을 채울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날 터였다.
하지만 오늘이 저물어도, 내일은 다시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태양이 다시 이곳을 비출 것임을 알기에, 사람들은 불안해하거나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구하지 못한 생명도 많았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고, 슬픔은 쉽게 아물지 않았다. 나 역시 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러나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오늘의 태양은 저물어 가더라도, 아직 내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지키려 했던 것.
그녀가 끝까지 선택했던 것.
나는 그것을 잊지 않기로 했다.
아이작은 내게 고위 연구직 자리와, 지구 재건 사업의 중요한 축을 맡아 달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가장 높은 자리보다도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바라보는 자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블레어와 나는 오세아니아에 작은 고아원을 세웠다. 화려한 건물도, 거창한 명분도 없었다. 그저 돌아갈 곳이 없는 아이들이 잠시라도 머물 수 있는 장소였다.
나는 그 아이들을 아들이라 불렀고, 딸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들은 기꺼이 내 자녀가 되어주었다.
아이들은 자랐고, 웃었고, 떠나갔다.
그리고 또 다른 아이들이 찾아왔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세월이 지나, 아이들 중 일부는 가정을 이루었다. 나는 결혼식장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사랑받고, 또 사랑하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그 풍경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칼리뮤를 떠올렸다. 보이지 않아도,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또 시간이 흐르고, 고아원을 찾는 새로운 아이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그것을 기쁜 변화로 받아들였다. 아직 세상에는 슬픔이 남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주 조금씩이나마 나아가고 있었다.
“아저씨, 저 왔어요.”
젊은 청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눈빛에는 생기가 가득했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오늘도 또 왔구나, 엘피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할머니가 쿠키를 좀 구워주셨어요.”
그가 내 몸을 살짝 일으켜 주며 말했다.
“블레어는 여전하니?”
내가 물었다.
“여전하죠. 할머니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만 같아요. 조금은 나이에 맞게 얌전해지셨으면 좋겠어요.”
엘피스가 한숨을 쉬듯 말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일지도 모르지.”
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엘피스도 따라 웃으며 봉투에서 쿠키를 꺼냈다. 나는 그가 건네준 부드러운 쿠키를 손에 들었다가, 그만 바닥에 떨어뜨렸다. 몸을 숙여 주우려 하자 엘피스가 말했다.
“아뇨, 그냥 계세요.”
그가 먼저 떨어진 쿠키를 집어 올렸다.
“아저씨도 얼른 기운 차리셔야죠. 아저씨가 들려주는 우주 이야기를 또 듣고 싶어요.”
엘피스는 쿠키에 묻은 먼지를 후후 불어낸 뒤, 아무렇지 않게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블레어의 손자였다. 나는 그를 바라보다가 피식, 옅은 웃음을 흘렸다.
“엘피스.”
“네, 아저씨.”
“네게 또 다른 우주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마. 조금… 긴 이야기일지도 몰라.”
“좋아요. 저는 듣고 싶어요.”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칼리뮤의 이야기.
별이 되었던 사람의 이야기.
긴 시간이 흐르고, 이야기는 끝에 다다랐다.
“그녀는… 죽은 건가요?”
엘피스가 조심스럽게 숨을 삼키며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녀는 사라지지 않았어. 지금도 내게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사랑을 가르쳐라, 엘피스. 말로가 아니라, 그 사랑과 함께 살아가면서 말이야.”
엘피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많이 지났구나. 너무 오래 너를 붙잡아 두면 네 할머니가 또 나한테 성질을 부릴 거야.”
내가 말했다.
“알았어요, 아저씨. 내일 또 올게요.”
엘피스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문밖으로 나서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의 밝은 미소 속에서 나는 내일의 태양을 보았다. 이제는 그가 품고 있는 빛이, 사람들의 다음 길을 비출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깊은 잠에 들었다.
별들이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번 꿈은 아주 오랜만에 평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