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를 따라서

# 1-3

by 더블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풍부함이 땅에 가득하였나이다”

시편 104:24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10




문명은 단지 인류의 생존을 위한 집단 공동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광활한 질서의 상징인 코스모스를 닮은 사회였다. 자연의 순환처럼 이어지고, 강물처럼 흐르며 서로 얽히고 기대는 공동체. 인류는 문명의 첫걸음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질서와 조화로움을 꿈꾸었다.


농업은 인간의 삶을 안정시켰고, 식량의 잉여 생산은 도시의 인구를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도시가 거대해질수록, 인류가 지니고 있던 공동체 의식은 희미해지기 쉬웠다. 종교와 신화 등, 허구를 상상해 내는 인간의 능력은 이전보다 훨씬 큰 공동체를 가능하게 했지만, 밀집된 인간들 사이에서는 정신적 유대를 흔들 만큼 현실적인 문제들이 등장했다.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개인은 비축 식량과 토지,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같은 왕과 같은 신을 섬기던 이들 사이에서도 눈에 보이는 실제적 가치는 충분한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스릴 필요성을 자각했고, 문명은 역할과 책임의 분배, 질서와 윤리의 수립을 요구받게 되었다.

고대 바빌로니아는 이러한 문명의 고민에 가장 먼저 체계적인 응답을 시도한 문명 중 하나였다. 기원전 18세기, 바빌론 왕조는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을 통일하며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이 왕조의 기반에는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비옥한 토지와 통합된 행정 구조가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도시국가와 부족이 뒤섞인 이 지역에서, 단일한 규범과 질서를 세우는 일은 시급한 과제였다. 바로 이 맥락에서 등장한 것이 함무라비 법전이었다.
함무라비는 바빌론 제6왕조의 여섯 번째 왕으로, 정치·군사·행정 전반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인 인물이었다. 그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통일한 뒤, 그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과 규범을 선택했다. ‘신이 부여한 법’이라는 권위 아래 제정된 함무라비 법전은 단지 범죄와 처벌을 나열한 문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계급, 재산, 성별, 가족, 상거래, 고용 관계에 이르기까지 공동체 전반의 질서를 구조화하려는 시도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요약되는 복수 원칙은 단순한 응보가 아니라, 형벌의 비례성과 균형을 중시하는 사고를 반영한다. 각 개인은 자신의 계층과 책임 안에서 규범을 지켜야 했고, 사회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조화를 이루어야 했다.
법전의 서문에서 그는 자신을 태양신 샤마시로부터 법을 부여받은 존재로 묘사하며, ‘강자를 제어하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함’이 법의 존재 이유임을 선포한다. 이는 고대 사회가 법을 단순한 정치적 도구가 아니라, 우주의 질서를 반영한 하나의 ‘도덕적 구조’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함무라비 법전의 내용이 아니라, 그 법이 지녔던 권위이다. 초창기 문명은 법을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라 ‘신의 의지’로 받아들였다. 앞서 언급했듯, 함무라비 법전은 태양신 샤마시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함무라비가 “위대한 나의 뜻을 따라 질서를 확립하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태양신께서 인간의 질서를 유지할 계시를 내려주셨고, 나는 그 계시의 대언자이자 집행자다”라고 선언한 것과 같다. 결국 당대의 위대한 왕으로 칭송받던 함무라비조차, 문명의 질서는 신, 곧 하늘의 뜻을 통해서만 성립되어야 한다는 점을 공표했던 셈이다.
이 법전은 신이 부여한 질서로서의 법을 선포하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 질서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고 행동할 것을 요구했다. 사회는 신의 질서, 즉 하늘의 운행처럼 정돈되어야 한다는 이상이 법과 제도로 구현된 것이었다.

그러면 여기서 더 근원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인간은 어떻게 하늘에서 질서와 조화를 보았을까?”
“그들은 왜 하늘의 구조를 사회의 모범으로 삼았을까?”
“왜 이들은 법을 코스모스의 질서로 이해했을까?”

고대인들에게 하늘은 무질서가 아니라, 가장 높은 질서 그 자체였다. 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존재인 태양은 매일 정해진 길을 따라 떠올랐고, 달은 규칙적으로 위상을 바꾸며 밤을 밝혔다. 별자리는 흐트러짐 없이 제자리를 지켰고, 계절은 순환하며 대지를 적셨다.
인류에게 태양은 생명의 원천이었다. 눈부시게 떠올라 대지를 밝히고, 생명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하며 하루를 여는 존재. 태양은 절대적인 권위자이자, 동시에 은혜를 베푸는 존재였다. 이는 곧 이상적인 통치자의 이미지로 이어졌다. 고대의 왕들은 스스로를 태양에 비유했고, 권위를 주장하는 동시에 은혜로운 통치를 이상으로 삼았다. 바빌론의 왕들 또한 그러했다. 그들은 태양신 샤마시의 대리자로서, 하늘의 법을 지상에 구현하는 존재를 자처했다.
달은 또 다른 방식의 권위를 상징했다. 태양이 물러난 밤에도 달은 어둠을 비추며 생명에게 방향을 제시했다. 그 위상 변화는 시기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었고, 농경과 제례의 순환을 알려주는 달력이 되었다. 달은 변하면서도 정직했고, 고요하면서도 생명을 감싸안는 존재였다. 이는 공동체 속 질서와 역할을 비유하는 상징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별들은 무엇보다 변하지 않는 존재였다. 하늘에 고정된 듯 제자리를 지키며 예측 가능하게 운행되었다. 어떤 별도 다른 별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았고, 그 정교한 조화는 인간에게 신비로움과 안정감을 동시에 주었다. 바빌로니아의 학자들과 제사장들은 이러한 별들의 움직임 속에서 코스모스의 질서를 읽어냈고, 그 질서를 본떠 문명의 구조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니 어쩌면 당시 바빌로니아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늘의 모든 별은 문명의 신민이며,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침범하지 않는다. 이 질서와 조화 속에서 코스모스는 유지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명도 그러해야 한다. 각자는 제자리에 있어야 하며, 그 조화 속에서 사회는 번영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시민들이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그 국회의원들이 법을 제정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고대의 법은 ‘왕’이라는 한 개인이 절대자의 권위를 빌려 자신의 기준으로 마음대로 만들어 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법의 시대를 살아가던 인류가, 그들이 경외해 마지않던 코스모스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들의 문명에 하늘이 품고 있던 질서와 조화를 새기려 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러한 법의 제정이 비합리적이었거나 무의미했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국 코스모스는 단지 하늘의 천체를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회의 모범이었고, 법이 지향해야 할 이상이었다. 법은 하늘처럼 엄정해야 했고, 태양처럼 은혜로워야 했으며, 달처럼 주기적이어야 했고, 별처럼 각자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여겨졌다. 그런 의미에서 함무라비 법전은 단순한 형벌 규정이 아니라, 코스모스를 본뜬 ‘이상 사회의 모형’이었다. 그 안에는 권력의 절대성과 그에 상응하는 책임, 구성원의 질서와 역할, 그리고 균형과 회복의 원칙이 함께 담겨 있었다.
문명은 그렇게 코스모스를 모방하며 성장해 나갔다. 그리고 코스모스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통해, 질서와 조화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 사회에 끊임없이 관여해 왔다.
하늘이 질서와 주기를 따라 움직이듯, 인간 사회 역시 그러해야 한다는 믿음. 그것은 두려움 속에서 질서를 갈망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코스모스 안의 자연을 닮고자 했던 인간의 가장 오래된 꿈이기도 했다.


문명은 단지 법과 제도로만 조화를 추구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떤 문명은 밤하늘 가득한 별들 속에서 삶의 윤리를 읽어내며, 자신들의 세계를 설계했다. 그렇게 설계된 조화롭고 질서 정연한 사회가 바로 최초의 민주주의와 윤리, 철학이 번성했던 고대 그리스였다.
이 책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인용하는 우주를 상징하는 단어, ‘코스모스(Cosmos)’는 고대 그리스어(Kosmos, κόσμος)에서 비롯되었다. 코스모스는 ‘질서’를 뜻하며 ‘혼돈(Chaos)’의 반대 개념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만물이 조화롭게 질서 속에 놓인 상태를 관념적 우주로 이해했고, 그 관념이 곧 우주를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그리고 이 사유의 출발점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물인 피타고라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약 500년경 활동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피타고라스는 말 그대로 수학에 ‘미쳐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이집트에서 기하학과 점성술을 배웠는데, 이러한 경험이 그의 수학적 세계관과 우주에 대한 흥미를 더욱 자극했을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모든 만물의 근원을 ‘수’로 보았다. 수가 만물을 구성하는 재료는 아니지만, 세계가 수적 조화와 비례를 따른다는 점에서 수학을 통해 우주의 원리와 비밀을 밝힐 수 있다고 여겼다.



“수들에서는 점이 생기고, 점들에서는 선이 생기며, 선에서는 평면이 생긴다. 평면에서는 입체가 생기고, 이것들로부터 감각 가능한 물체들이 생겨난다. 이 물체들의 원소는 불·물·흙·공기이며, 이 원소들은 서로 변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으로부터 영혼을 지닌 구형의 우주가 생겨났고, 지구 역시 구형이며 곳곳에 사람이 산다.”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피타고라스는 인류 역사에서 우주를 ‘코스모스(질서)’라고 명명한 최초의 철학자로 기록된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우주가 수학적 비율로 움직이며, 천체의 운동에는 조화(harmonia)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조화는 질서이며, 질서는 아름다움의 조건이었다. 여기서 ‘질서 있는 전체’, 즉 ‘코스모스’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피타고라스에게 우주는 무작위의 혼돈이 아니라 완결된 수학적 질서로 이루어진 하나의 아름다운 구조물이었다.
또한 그는 우주의 조화를 인간의 영혼·삶·정치 공동체의 모델로 삼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피타고라스 학파가 ‘수’와 ‘비례’를 만물의 근원으로 보았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 수적 질서가 도덕·정치적 질서에도 적용된다고 믿었다. 이는 곧 “우주의 질서가 바람직한 인간의 삶을 비춘다”는 사유 구조로 이어졌다. 피타고라스는 “자연의 수학적 조화는 인간 사회의 조화로 투영될 수밖에 없다”는 관점을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 철학은 코스모스의 조화로움을 인간이 마땅히 본받아야 할 질서와 조화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윤리와 철학이라는 방법을 통해 그 조화를 삶에 적용하려 했다. 물론 그들이 추구한 조화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조화와는 다를 수 있다. 현대의 우리는 자유·평등·상생을 자명한 가치로 여기지만, 당시에는 명확한 신분과 위계가 존재했고, 개인의 권리는 종종 제한되었다.
그럼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질서와 조화를 추구하려 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그 질서는 권위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만이 아니라, 피타고라스가 보았던 것처럼 “조화는 인간의 우주적 본성이며, 우주가 가르쳐주는 윤리”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그밖에도 미노아 문명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의례에 참여하고 춤과 축제를 나누던 유연한 사회 구조를 갖추며, 위계보다는 공동체적 조화를 우선시했다. 인더스 문명은 계층 갈등의 흔적 없이 질서 정연한 도시계획과 위생 시스템을 구축해, 평등한 삶의 방식을 추구한 문명으로 평가받는다. 고대 중국에서는 하늘의 뜻을 받드는 ‘천명’ 사상이 통치의 기반이 되었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예(禮)’로 구현하려 했다. 이집트 문명 또한 ‘마아트’를 중심 가치로 삼아, 사회의 정의와 질서를 우주의 법칙과 조화롭게 일치시키려는 사법·종교 체계를 발전시켰다. 이처럼 초기 문명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균형을 추구했다.

결국 유년기의 초기 문명이 지향한 사회의 모습은 궁극적으로 ‘조화’였다. 인간과 인간의 조화, 인간과 자연의 조화, 그리고 인간과 우주의 조화를 꿈꾸었다. 이러한 문명들의 사유와 실천은 단지 생존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더 나은 삶과 세계를 구성하기 위한 형식이었다. 그들은 코스모스를 이상적인 세계로 바라보았고, 그 질서와 조화를 닮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이러한 문명들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자신들의 이상향을 실현하려 했다. 플라톤의 아틀란티스, 인도 아리아인의 리타(자연 질서) 개념, 샤머니즘과 원주민 공동체의 순환적 세계관은 모두 각 문명이 추구한 조화와 질서의 이상 아래에서 발전해 왔다. 이 사유들은 자연의 원리를 인간 사회에 반영하려는 시도였으며, 그 과정에서 조화·평등·책임·순환이라는 가치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강조되었다.
그들에게 코스모스는 이상적인 세계였고, 자연과 인간은 그 코스모스 아래에서 질서를 본받는 존재였다. 문명은 코스모스에 속한 자연을 이해하고 따르며, 그것을 삶의 이상으로 삼으려 했다.

우리는 유년기의 인간을 ‘순수하다’고 말한다. 외부 자극에 쉽게 노출되고, 즉각적으로 학습하며, 누군가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이다. 성장 중인 유년기의 문명도 마치 그러한 어린아이와 같았다. 문명은 하늘 위에 펼쳐진 코스모스에 그대로 노출되어 그것을 배우고, 코스모스가 보여주는 질서와 조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했다. 초기 문명은 코스모스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 땅을 갈고 씨를 뿌렸으며, 거두는 과정을 통해 세계의 이치를 배웠다. 그리고 천체의 운행처럼 서로의 필요를 인식하고 각자의 역할을 정하며 ‘조화’를 찾았다.

그것이 유년기의 문명이었고, 인간이 가장 순수하게 코스모스를 닮고자 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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