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을 위한 진화

# 1-5

by 더블윤
“무릇 탐욕에 눈이 어두운 자는 자기의 생명을 잃게 되느니라.”

잠언 1:19




르네상스(Renaissance). 프랑스어로 “다시 태어남”, “재탄생”을 뜻한다.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서유럽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인간성 해방을 위한 문예 부흥 또는 문화 혁신 운동을 지칭하는 용어로, 중세와 근대의 전환점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된다. 여기서 문예부흥은 단순히 예술 활동의 부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세 유럽에서 고대의 지식들이 번역되지 못한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때, 이슬람 세계에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갈레노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작이 그리스어에서 아랍어로 체계적으로 번역되고 있었다. 이슬람 학자들은 그 저작들을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석을 달고 비판하며 지식을 확장시켜 나갔다.
이 지식들이 알안달루스와 시칠리아를 통해 12~13세기에 라틴어로 재번역되며 서유럽 학문 세계로 유입되기 시작한다. 즉, 서유럽은 자신들이 태동시킨 고대 지식을 ‘재발견’하거나 ‘재접촉’하게 된 셈이다.
그 이후 서유럽에서는 예술 전반에 걸쳐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재인식하고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고대의 문학·사상·예술을 본받아 인간 중심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예부흥 운동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르네상스는 단순한 시대 구분이 아니라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볼 수 있다.
또한 14세기 유럽의 혼란은 사람들에게 불안한 현실을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를 강하게 자극했다. 그 시기 유럽 대륙을 휩쓴 흑사병은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신 중심 사회에 대한 근본적 의심을 싹트게 만들었다. 질병의 잔인함은 기도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선한 자와 악한 자 모두에게 동일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왜 신은 우리를 이렇게 내버려두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신학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품게 되었다.
여기에 농업 생산성 하락, 전쟁, 역병이 겹치며 농노제 기반의 봉건 질서 자체가 크게 흔들리게 된다. 도시와 상공업, 화폐 경제가 성장하면서 토지를 가진 영주의 힘이 아니라, 돈과 기술을 가진 자들이 새롭게 영향력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신이 정한 신분 질서’라는 봉건적 이데올로기와 실제 사회·경제 구조 사이의 뚜렷한 괴리를 낳았다.
이런 위기의 시대 속에서 ‘고대 문명의 지식’은 인간에게 덕, 영광, 시민적 명예, 그리고 이성을 되찾게 해 주는 자원으로 작동했다. 고대 철학은 자연을 이해 가능한 질서로 바라보게 하여 ‘재난은 신의 징벌’이라는 단순한 해석에서 벗어나 자연·인간·사회를 관찰과 논증을 통해 설명하려는 태도를 회복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플라톤의 《국가》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등의 저작들은 “좋은 통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그러니 혼란스러운 14세기 유럽의 한복판에서, 지식인들에게 그리스 고전 철학은 그들이 직면한 위기를 견디고 헤쳐 나가기 위한 실질적 사유의 자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단순히 다시 읽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에 적용하며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유럽 중세의 종료는 말 그대로 ‘재탄생’, ‘부활’, 즉 ‘르네상스’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정한 철학자는 존재하는 것을 사랑하며, 의견이 아니라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
항상 존재를 바라보는 자, 그가 철학한다.
지금 왕이라 불리는 자들이 진정으로 철학을 하지 않는 한, 그리고 정치 권력과 철학이 하나로 결합되지 않는 한, 국가들의 불행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 플라톤, 《국가》 중 일부



유럽 문명의 르네상스 시기 이후, 사람들은 무지의 그림자를 벗어나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 과학혁명은 인간에게 이성을 되찾아 주었고, 인문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켰다. 하지만 그 시기 과학혁명에 대한 이야기와 르네상스·근대 유럽 문명의 세부 모습은 2장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권위의 그림자가 걷힌 문명은 과연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떠한 사상이나 정신도 언제나 바른길로 향하는 것은 아니며, 코스모스를 바라보고 지향하는 마음은 단순히 하늘을 관측한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르네상스와 근대 문명은 확실히 기나긴 암흑기를 벗어났지만, 여전히 코스모스는 그들로부터 멀리 있었다.

인문주의 사상은 인간을 다시 주체로 세우고자 했다. 신의 질서 아래 종속되던 인간은 이제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정의했다. 그러나 그때의 문명이 말한 ‘인간’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의 존엄은 여전히 백인, 남성, 시민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만 유효했다.
18세기 프랑스혁명은 자유와 평등을 외쳤지만, 그 혜택은 타민족·식민지인·여성·노동자에게는 닿지 않았다. 이성, 자율성, 윤리적 가치를 강조하고 신의 권위를 비판했던 이들이, 동시에 흑인을 노예로 만들고 활발히 거래했던 모순된 시대였다.
인문주의에서 비롯된 계몽주의와 국민국가의 탄생은 해방과 자율성의 언어를 민족주의로 확장시켰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변질되면서 배제와 차별의 장치가 되었고, 흑인 노예제·식민주의·파시즘과 결합하면서 “누구를 인간으로 볼 것인가”라는 문제가 문명의 심부까지 침투하기 시작했다. 타인을 배제하는 이념이 뿌리 깊게 심어진 것이다.
더 나아가, 사람들의 무지를 드러내고 이성으로 인도해야 할 과학마저도 이 모순적 제도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체질 인류학, 두개골 측정 등을 통해 백인은 문명인, 흑인은 본능적 미개자라는 인종 간 우열론이 등장했다. 다윈의 자연선택을 자의적으로 사회학과 결합한 ‘사회적 다윈주의’는 ‘자연의 질서’라는 이름 아래 약자를 밀어내는 논리가 되었고, 유사과학에 불과한 '우생학'은 인간의 유전자를 개량한다는 이름 아래 국가 차원의 인간 선별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 결과, 열등하다고 규정된 이들에 대한 학살과 억압이 귀족·권력층 내부에서 정당화되기에 이르렀다.

18세기, 증기기관의 등장은 인류 문명을 완전히 새로운 궤도로 이끌었다. 씨를 뿌리고 해를 따라 일하며 비를 기다리던 시간은 이제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에 밀려났다. 기계는 인간의 노동을 대체했고, 생산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늘어났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불러온 풍요는 인간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사람의 몸은 노동 단위가 되었고, 거대한 공장을 돌리는 기계부품 중 하나로 취급되었다. 어린이와 여성이 값싼 노동력으로 편입되었고, 도시와 빈민가, 오염과 공동체의 붕괴는 무서운 속도로 증가했다.
문명의 가장 큰 가치는 이제 ‘부’와 ‘속도’가 되었고, 이러한 새로운 욕망은 사람들의 마음을 잠식해 갔다. 그리고 이 욕망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전 지구적 재앙의 전주곡이 되었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번영의 이면에는 전례 없는 환경 파괴가 도사리고 있었다. 석탄이 뿜어내는 검은 매연은 스모그가 되어 도시의 하늘을 가리고 인간의 폐를 질식시켰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 템즈강은 화학 염료와 폐수로 죽음의 강이 되어버렸다. 거리엔 오물과 오염이 가득했고, 그로 인한 콜레라와 전염병이 도시를 휩쓸었다. 탄소는 이 시기부터 대기 속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축적되기 시작했다. 기후위기의 시계는 이때 작동하기 시작했고,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
자연은 이제 증기기관을 위한 연료로 전락했다. 인간들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땅을 파고 숲을 베어내며 생태계를 무너뜨렸다.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고, 그 시선에는 더 이상 경외나 두려움이 아닌 ‘소모 가능한 자원’에 대한 탐욕만이 남아 있었다.
이 시기 대부분의 문명은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에 돌입했다. 그 과정에서 수단은 중요하지 않았다. 전 지구적 정복과 수탈이 벌어졌고, 인간은 타인의 권리와 자연의 질서를 침해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인간은 이제 땅을 가꾸고 하늘을 닮으려는 방식을 잊고, 땅을 파헤치며 스스로 하늘에 닿으려는 욕망만을 키워갔다.


코스모스는 단지 우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주가 품고 있는 질서이며, 세계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모든 것이다. 태양계와 자연, 생명, 인간까지, 이 세계의 구성 전부가 코스모스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제 코스모스의 그 어느 것에도 시선을 두지 않았다. 문명의 성장기였던 중세처럼 어떤 권위가 시선을 가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경외의 시선을 거두고 욕망이 제공하는 것만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인류가 이 시기에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진화는 생물학적 적응이 아닌, 탐욕을 채우고 지배를 확장하기 위한 문명의 진화였다고 말하고 싶다. 인간의 가장 강력한 도구였던 이성은 자연을 이해하는 도구에서, 자연을 통제하고 개조하는 기술로 변신했다. 대륙은 분할되고, 자원은 추출되었으며, 인간은 식민지화되었다. 콩고의 고무, 인도의 면직물, 아프리카의 금과 다이아몬드, 이 모든 자원수탈 뒤에는 ‘문명화 사명’이라는 구실이 붙었다. 지도·통계·기후학·의학 등의 인간의 지식은 기꺼이 정복의 최전선에 서며 지배를 위한 기술로 변모해갔다.
이성은 더 이상 코스모스나 자연을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 그중에서도 소수 지배층의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 지배의 논리와 ‘진화’의 정점은 이전에 없던 파괴적 전쟁으로 폭발했다. 제국주의의 확산은 식민지 확보 경쟁을 불러왔고, 신대륙과 타 문명은 교류의 대상이 아니라 수탈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자원·시장·노동력 확보 경쟁으로 인한 대륙 분할 갈등은 국가 간 충돌로 이어졌다. 극단으로 치달은 민족주의는 파시즘을 낳았고, 민족과 국경의 분쟁을 더욱 격화시켰다.
산업화는 부를 낳기도 했지만 자본 의존도를 심화시키며 국가 경제를 흔들었고, 일부 국가는 체제 안정과 내부 결속을 위해 서슴지 않고 ‘전쟁’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분열된 인류에게 공존과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정의·평화·자유·결속 같은 달콤한 말과 함께 병기를 꺼내 들었으니, 정말이지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코스모스는 인류 문명의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이 시기는 인간의 이성이 인류를 진보시킨 시기였다. 하지만 동시에 자연과의 조화를 잃고, 윤리를 망각한 시대이기도 했다. 진보의 외형 아래에서는 파괴와 단절의 진화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더욱 불편한 진실은, 이 시기의 문명과 인간의 의식이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더 이상 코스모스를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자신들이 만든 인공적 불빛 아래에서 자원을 수탈하고,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지구를 다시 설계한다.
인류는 코스모스를 바라보던 시선과 그것을 이해하고 읽으려는 이성을 통해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러나 지구를 지배하게 된 인간에게는 코스모스의 본질 중 하나인 ‘공존의 지혜’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 결과 기후는 변하고, 생물종은 사라지며, 인간 사회 내부에서도 불평등과 불균형은 심화되었다. 윤리 없는 의식의 진화는 코스모스를 동경의 대상에서 지워버렸고, 인간의 시선은 더 이상 하늘을 향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우리는 정말 진보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진보라는 이름으로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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