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2)
“이제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 질문에 대해 니체는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
니체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절대적 기준이 사라진 세계에서, 인간은 더 이상 주어진 가치에 기대어 살아갈 수 없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하나였다.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가능성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힘을, 니체는 하나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욕망’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로 보았다. 그러나 니체에게 인간은 단순히 욕망을 충족하는 존재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 더 높은 상태로 나아가려는 존재로 보았다. 그리고 그 움직임의 근원에는 하나의 근본적인 충동이 작동하고 있다고 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힘에의 의지’였다.
여기서 말하는 ‘힘’은 단순한 물리적 힘이나 타인을 지배하는 권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충동, 자신을 확장하고 표현하려는 생명력, 그리고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려는 능동적인 의지를 포함한다. 니체는 이 힘을 마치 중력을 거슬러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려는 의지에 비유했다.
니체는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을 단순한 유지나 보존이 아니라, 끊임없는 확장과 상승의 과정으로 보았다. 즉 인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해지려 하고, 더 높아지려 하며, 스스로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니체의 철학에서 허무주의는 단순한 절망의 상태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기존의 가치들이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다시말해, 니체는 모든 가치가 사라진 지점에서 인간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다. 더 이상 외부에 의해 규정된 도덕을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고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창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고통으로부터의 위대한 구원이며 삶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창조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고통과 많은 변신이 필요하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그것을 통해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때로는 그 과정이 어렵고 고통스럽게도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니체는 이러한 파괴와 고통의 순간을 지나야만, 인간이 비로소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니체의 사유는,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라는 그의 철학의 정수로 이어진다.
니체는 이러한 사유의 끝에서 하나의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초인(또는 위버멘쉬)’이다.
초인은 단순히 강하거나 우월한 존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타인 위에 군림하거나 특별한 능력을 지닌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며 살아가는 인간, 다시 말해 기존의 기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존재를 의미한다.
다시말해, ‘힘에의 의지’를 수행하는 인간이 초인의 근본이 된다.
니체가 제시한 초인은 처음부터 초인으로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힘에의 의지’를 실천해 나가며 고통과 시련을 통과하고, 마침내 기존의 자신을 부정하고 넘어서는 자기 극복을 이루어낸 인간을 가리킨다. 즉,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과정 속에 있는 인간, 초인은 바로 그러한 인간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초인은 도달해야 할 하나의 고정된 이상이라기보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넘어서려는 삶의 태도에 가깝다. 과거의 자신,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 타인이 정해 놓은 가치들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의심하고, 부수고, 다시 세우는 존재. 그것이 니체가 말한 초인의 모습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과정은 결코 평온하지 않다.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는 일은 언제나 불안을 동반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일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니체는 이러한 고통마저 긍정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결국 니체의 철학에는 창조와 극복, 그리고 자기 갱신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강한 신뢰와, 삶 그 자체를 긍정하려는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
어쩌면 니체의 철학은 칸트가 제시한 윤리를 더욱 구체화하고, 더 강하게 실현할 수 있는 인간을 제시한다.
칸트의 ‘정언명령’이 “인간은 어떻게 행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의 내면에 상기시켰다면, 니체의 ‘초인’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창조해내는 존재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어쩌면 그의 철학을 “네가 살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살아라.”라는 말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니체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욕망을 따르는 인간상’을 비판하며 ‘힘에의 의지’를 제시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그가 말한 초인의 의미는 전혀 다른 방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초인은 자기 자신을 확장하고, 넘어서며, 다시 형성하는 존재이다.
초인은 욕망에 휘둘리는 약한 인간이 아니라, 스스로 규율을 창조하고 그것을 감당하는 인간이다.
즉, 니체가 말한 초인은 절대적 가치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그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스스로 정의하고 짊어지는 존재이다.
결국 철학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성찰’이다. 그리고 니체는 그 성찰을 한 걸음 더 나아가 ‘실행’으로 밀어붙인다.
“당신은 당신의 삶의 주인인가?”
“어떤 가치를 따르고 있는가?”
“그 가치는 당신이라는 존재를 상승시키고 있는가?”
그의 철학이 던진 이 불안한 질문들은, 우리가 마주해야 할 하나의 벽이 된다. 두려움과 불확실성으로 이루어진 벽이다.
그러나 코스모스를 이해하기 시작한 우리의 의식은, 더 이상 주어진 질서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주어진 질서를 긍정 또는 재 설계 할 수 있고,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으며, 그 두려움과 고통의 벽을 넘어설 가능성을 지닌 존재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이전의 인간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넘어선 인간, 새로운 인간이 된다.
“철학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드는가?”
이제 처음에 던졌던 질문에 답할 차례다.
그 답은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방향이다.
우리는 새로운 사람,
‘초인’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