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에 대해 고하자면

by 이채이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녔던 나는 독재 정부 주도의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반공교육은 어디에나 흔한 것이었다. 학교 앞 문방구 벽에는 반공 방첩의 종이 인쇄물이 붙어 있었다. 간첩 신고 포상금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학교마다 영원히 어린이인 '이승복 어린이'가 작은 책보를 들고 동상으로 서 있었다. 공산군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친 이유만으로 아가리가 찢기고 끌려가 죽었다는 영웅담이었는데, 이런 이야기는 전설로 보호받았다.


1학년이 되면 학교를 돌며 이승복 어린이가 얼마나 훌륭한 일을 했는지를 주입받았다. 그 외침이 진실인지 왜곡되었는지 창조되었는지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승복 어린이는 청동상이 퍼렇게 녹이 슬도록 화단에서 외치고 선동하고 이끌었다.


암울했던 80년대를 겪으며 성장한 내가 느끼는 최고의 수치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섬세하게 도려내 버리고 싶은 것들이다. 어른들의 공작으로 아이 인생에 오점을 남기는 것이 당연했던 이 허망한 일련의 사건들을 모조리 토해 내 본다.


국민학교는 우매한 국민이 더 우매할 수 있도록 입맛에 맞게 갈고 다듬어 쓰기 위한 제련소나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에는 매년 '반공'을 앞세운 여러 대회가 열렸는데, 반공 글쓰기, 반공 포스터와 표어, 반공 독후감 쓰기 대회 등등.. 그 안에서 최고는 '반공 웅변대회'였다고 회상한다. 가슴을 들썩이게 하는 연사들의 웅변에 정부의 애정은 무한정이었다.


나는 '반공 웅변대회'에 나갔다. 왜 나가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원고에는 불개미 나라의 임금이 등장했고 평화로운 우리 마을을 불개미들이 공격한다는 내용이었다. 전교생 앞에서 외쳤고 나는 박수받았고 칭찬받았다. 만약 의구심을 품은 한 명의 어른만 곁에 있었더라면 나는 외치지 않았을 것이고 박수받지 않았을 것이고 칭찬받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내게 씌워진 첫 번째 혐의다.


전 국민의 사상화가 목적이라면 해당 정부의 노력은 탄탄하고 완벽해서 완전범죄에 가까웠다. 감동적인 웅변에 박수와 칭찬이 쏟아졌지만, 이제 돌아보면 그것은 어린이 입을 빌려 어른들의 이념을 확성기에 실어 나른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이승복 어린이를 붙잡아 이념교육의 도구로 써먹었듯이


안개가 짙어지면 가을이 온다. 가을이면 새벽의 안개 산에 올라 알밤을 주웠는데, 손으로 안개를 걷어 내며 촉촉하게 젖는 아침의 질감은 기분 좋은 것이었다. 호흡은 메마르지 않고 폐 속의 산소는 싱싱하고 가벼웠다. 아침의 나뭇가지에는 밤새 하늘을 날아온 풍선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그 풍선은 이야기를 싣고 왔는데, 군복을 입은 남자들이 장총 앞에 칼을 매달았다. 칼끝은 이미 붉게 물들었고, 푸른색 군복에는 피가 낭자했는데, 그 피는 임신한 여자의 불룩한 배에서 쏟아져 나온 것이었다. 배 속에 아이를 잉태한 여자의 시선은 죽음을 예감한 자의 것으로 저항적일 수도 투항적일 수도 없었던 것 같았다. 그저 찔리고 흘리고 쓰러질 뿐이었다.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그것은 무차별적이고, 폭력적인 것이었다. 분명 풍선과 무서운 그림은 관계가 있었다. 그림을 한 장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이것은 해명되어야 할 그 무엇이었다.


주머니 속의 그림은 해석되지 못한 채 선생님에게 전달되었는데, 선생님은 그 무엇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림의 이름은 '삐라'라고 불리는 불온한 것이었다. 내가 던진 이 불온한 것 앞에서 어른들은 갈팡질팡했고 현실의 절벽 위에서 이 종이는 내다 버릴 수 있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이 불온한 전단은 파출소로 갔다. 그들은 강력하고 선동적이며 이념에 찬 종이 쪼가리를 그저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학교로 거대한 상이 도착했다. 나는 전교생의 부러움을 받으며 '반공 어린이 상'을 받았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은 길고도 고조되었으며 흥분한 듯했다.

나는 반공의 정신에 동조하는 동지의 모범으로 추앙받았다. 어린 내가 구차한 추앙을 바라지 않았다는 것을, 그 시대를 산 어른들도 알고 있었으리라 믿고 싶다.


그 찜찜한 기억은 5.18의 역사를 알고 난 후 참회와 원망으로 남게 되었다. 어렸던 나는 갑작스레 도착한 거대한 상을 거부할 배짱도 용기도 지혜도 없었다. 선생님은 어린 나를 두고 길게 설명을 했지만, 그것은 전단을 발견한 후 취할 행동의 이념에 관한 것이었지, 푸른색 군복을 입은 우리의 군인이 왜 흰옷의 원피스를 입은 여인을 칼로 찌르는 것인지, 여자가 흘리는 피눈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 장면은 세월이 흐른 뒤까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상패에 갇혀, 나는 두 번째 수치를 삼킨 채 나이 먹었다.


내 부끄러움의 근원은 과거의 어른들에게만 있지 않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여전히 제대로 된 해명을 해주지 못한 채 미루었다. 역사는 되돌릴 수 없지만, 생각을 바로잡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떳떳하지 못한 역사가, 오늘도 반복되고 있음을 느낀다. 아직도 꿈속의 어린 나는 가을 안개 가운데 서 있다. 해가 뜨면 안개는 걷히겠지만, 내 부끄러움은 여전히 아물지 못한 딱지처럼 그 자리에 남아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별에서 보낸 편지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