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하다’라는 말은 순우리말이 아니지만, 이미 우리말 속에 부드럽게 녹아든 듯한 유순함이 있다. 반면 ‘입맞춤’은 어딘가 수줍음에 가깝다. 입맞춤이 꿈속에서 스쳐갈 법한 한순간을 표현한다면, 키스는 조금 더 은유적이고 일상적이지만 야하거나 상스럽지 않다.
키스의 순간은 여러 방식으로 기억되고 저장되어 전해진다. 오직 촉각으로만 그 순간을 다시 불러내려면 눈을 감아야 한다. 사랑의 시작과 진행의 입구에서 이루어지는 키스는 대개 진실하다. 내가 기억하는 두 키스를 가만히 더듬어 본다.
황금빛 옷을 입은 남자의 키스는 클림트의 그림 속 키스다. 그는 평생 많은 여자와 사랑을 나누었지만, '키스'라는 작품 속의 여자는 한결같은데 알마 쉰들러라고 전해진다.
알마는 열일곱 살이던 해, 클림트에게서 생애 첫 키스를 받았다. 그녀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평생 그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은 내 생애의 첫 키스를..."
두 사람의 키스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록되었는데, 알마에게는 일기로 클림트에게는 그림으로 남았다.
클림트와 알마, 그들의 키스는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궁전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황금빛 보료 위에 수수한 잔꽃들이 흩어져 있다. 알마는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채 키스를 기다린다. 살짝 드러낸 다리와 어깨가 은근한 관능을 더한다. 클림트는 조심스레 그 순간을 완성하려 한다.
이 키스는 일상의 키스를 한 단계 끌어올려 신성한 순간으로 만들었다. 클림트는 자신의 감각에만 머무르지 않고, 알마가 느꼈을 첫 키스의 설렘을 작품 속에 부드럽게 녹였다.
그들의 키스는 완성되지 않았고 곧 완결될 키스로 서서히 더듬어가고 있다. 서로에게 빠져든 그들의 키스가 달콤했을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이 그림 앞에 서면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소름이 돋는다. 나는 클림트의 키스가 진정성 있는 키스였을 것이라고 믿는다. 과거의 키스는 그림 속에서 현재로 살아 있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의 순간처럼 다가온다. 작품 속 키스는 완결되지 않은 채 영원을 향해 살며시 뒤꿈치를 든다. 그의 ‘키스’는 오늘도 현재형이고, 동시에 미래형이며, 결국 영원형이다.
클림트의 황금빛 키스처럼 기억 속에 또 하나의 키스가 떠오른다. 그것은 애타는 키스였고 광장의 키스였으며 불륜의 키스였다.
직장에서 단체 회식을 마무리하던 늦은 밤, 텁텁한 횟집을 나와 바닷가로 향했다. 보슬거리는 빗 속에서 두 개의 그림자는 하나로 겹쳐져서 뜨겁게 뭉쳐지고 있었다.
얼마 전 만삭의 아내와 다정히 손잡고 걷던 젊은 남자, 얼굴에 멍이 든 채 출근했던 여자였다. 가로등 아래서 여성의 빨간 트렌치 코트자락은 소리 없이 나풀거렸다. 비를 맞으며 그들은 오래오래 키스했다. 회식 자리를 박차고 나간 그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뜨거운 심장을 입술에 담아 온몸으로 비틀었고 마침내 젖었다. 그들의 키스는 로맨스이자 금기의 키스였지만 그 순간 왠지 순수하게 느껴진 것은, 그들의 행위 속에서 발견한 애달픔과 순전히 나의 취기 때문이었을 것이리라...그리 생각한다.
그들의 키스는 사회도덕적으로 온당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키스를 나누어 가지고 서로를 탐미하는 동안 그들에게 그 어떤 속박도 중요치 않아 보였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클림트의 키스도, 광장의 키스도 마침내 입술로 완성됐다. 나는 키스란 본래 입술로 완성되는 것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곤 한다.
신체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얼굴에서 생각은 시작된다. 눈의 키스는 어떨까? 관능적이고 농밀할 수 있지만 행동성이 약하다. 코는 어떨까? 접촉하기 쉬울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맥이 빠진다. 뺨은 어떨까? 뺨은 부드럽고 전면적이지만 날카롭지 못하다. 입술은 어떨까? 입술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출하는 과감함을 실천하기에 충분하다.
남자의 손가락이 여인의 얼굴에 드리운 머리카락을 걷어낼 때, 손끝이 귀를 스치고 뺨과 목덜미를 살짝 건드릴 때, 키스 직전의 전희는 최고조에 이른다. 머리카락이 개입되지 않는 연인의 키스는 밋밋하다.
손끝에서 입술로 이어지는 키스는 가벼움과 진함,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움, 설렘과 기쁨, 길고도 집요한 그 어떤 마음도 줄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사랑을 각인시키고 서로를 더듬으며, 사랑의 처음이자 끝으로 빛 날 수 있다.
신이 인간에게 키스를 허락한 것이라면, 키스는 무한 시공에서 영생을 누리지 못하는 인간이, 잠시나마 영원을 맛보는 축복의 시간을 얻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순전히, 그것은, 신의 배려일 수 있다.
클림트가 알마와 나누었던 첫 키스는 이제 세계인의 '키스'가 되었다. 두 연인이 나누던 불륜의 키스는 열기를 식히는 그 순간의 것으로 남았을 것이다. 어떤 키스든, 순간의 진실만은 똑같다.
매일 새로운 사랑이 태어나고 있다. 시작을 위한 것이든, 재회를 원한 것이든, 마지막 이별의 키스건간에 그것은 현재 진행형으로 존재할 때 아름답다. 마음에 기록된 키스는 언제나 현재를 산다.
* 사진은 anymaum3832님의 것을 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