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대해 생각하는 아침이다. 이성이나 생각의 필터 없이 쏟아내는 말의 홍수 속에서, 나는 이리 밀리고 저리 뒤집히면서 허우적댄다. 언어의 진정성을 논하기에 앞서, 타락과 혼란의 시대에도 말과 글로 세상의 우매함을 걷어 내고자 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 가운데, 나는 정조대왕을 떠올린다. 그는 군주의 말과 행동이 자신뿐 아니라 신하들의 눈에도, 천권(天權)을 지닌 자의 그것으로 합당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규장각 신하들이 보고 들은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하게 하고, 이를 주기적으로 읽으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이러한 정조대왕의 어록을 모은 책이 <일득록>이다. 정조 대왕 어린 시절의 비화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의 일생은 발가벗겨진 채 광화문 네거리에 걸려 있었다.
탕평을 거부한 대신들의 농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중심을 잡으려는 진중한 몸놀림이었다는 것을 안다. 그의 말 한마디는 자신을 향한 절박한 충고였고 친신(親信)들에게 내리는 다짐이었고 대적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굳건함을 알리는 것이었다 믿는다.
그는 평생 책을 가까이했고, 글을 즐겨 읽는 문신들을 총애했으며, 국법에 명시된 적서의 차별조차 슬며시 뭉갰다. 그는 말한다.
"무의미한 하루를 보낸 뒤에는, 좋은 옷도 편치 않고, 맛난 음식도 맛있지 않다. 마음속에 부끄러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스스로를 경계하는 자경문(自警文)의 형식을 띠고 있다. 정조는 타인의 눈에 비친 모습보다 자기 마음이 떳떳함을 더 귀하게 여겼다.
그는 평생 단 하루도 자신을 경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자기 잘못을 듣고자 소망했으며, 맑고 밝고 높아짐으로써 범접 못할 군주의 위엄을 스스로 세웠다.
그는 하찮다고 하는 것들을 가볍게 보지 않았고, 귀하다고 하는 것을 고귀하게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말은 공허하지 않았고 한지에 스며드는 먹물처럼 진중한 곳에서 무명의 낮은 곳으로 서서히 번지고 스며들었다. 그는 말을 귀히 여길 줄 알았으며 말의 무책임함을 꾸짖으며, 고르고 완만하게 인재를 등용해서 진정한 문성(文聖) 군주의 삶을 살았다.
정조대왕 앞에서 나는 무한히 작아진다. 그러나 왜소해짐을 느끼는 그 순간 나는 미묘한 기쁨을 누린다.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큰 스승을 가진다는 것, 숭고한 정신의 기둥에 기대는 자의 마음은 이러할 것이다.
나는 참고 견디며 삶의 의미를 남긴 위대한 학자로는 사마천을 떠올린다. 한 무제 때 흉노와 싸우다가 패배해 포로가 된 이릉 장군을 변호한 죄로,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 일은 너무도 유명하다. 당시 패배한 이릉 장군을 비방하고 비난하기는 쉬웠을 것이다. 홀로 장군의 용기를 감싼 마흔다섯, 사마천의 마음은 순수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형 앞에 궁형을 선택하고 평생을 거세의 치욕 속에서 살았지만, 역사에 대한 그의 욕망은 결코 거세되지 않았다. 그는 살아남았고 방대한 중국의 역사를 집대성했고, 한 무제의 사치, 잦은 전쟁, 가혹한 형벌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날카롭게 기록했다.
나는 정조 대왕과 사마천의 말의 용기에 대해 말하고 싶다. 천권(天權)을 가진 자가 가장 낮은 곳의 인재를 어루만지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한순간도 비천한 곳에 마음 두기를 원치 않았던 사람의 용기 말이다. 그리고 죽음보다 치욕적인 삶을 택하고 살아냈고 결국 역사가의 사명을 완수한 용기.
정조는 실행의 말로 세상을 다스렸고, 사마천은 글로 수천 년의 시간을 다스렸다. 그 말들은, 민낯이 추악한 말속에서 아직 갈 길을 찾지 못한 우리에게, 묵직한 말의 책임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