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네 자매의 삶을 기억하며...

by 이채이

시골 마을에 딸만 넷인, 가난한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젊어서 술만 마시던 남편은 객사했고, 홀로 딸들을 키웠다. 정부에서 영세민으로 지정한 탓에 정부미를 받아 살 수 있었지만, 가난과 무지는 늘 한 몸처럼 따라다녔다.

그 어머니는 정부 곡식으로 아이들의 밥을 해서 먹이고, 동네 일을 거들며 동정을 얻었다.

어린 나의 눈에 그 사람은 평생 동정을 거부했던 것 같다. 대단한 자존심이라고 사람들이 수군댔기 때문이다.


네 자매는 대체로 말이 느리고 아둔했다. 어수룩한 말만큼 그들 삶의 언어도 빈곤했다. 무언가를 제대로 표현하는데 미숙했고 그 미덥지 않은 말을 오래 들어줄 사람 또한 없었다. 얘기를 오래 들어봐도 따뜻한 인간미가 스며든다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절박 하거나 뒤죽박죽인 말이 많아서 해독하기 어려웠다.


큰딸은 국민학교를 졸업하자 식모살이를 갔다. 굼뜬 행동과 더듬는 말투 탓에 늘 구박을 받았지만, 입 하나 덜어내는 것만으로도 집안에는 숨통이 트였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그녀가 가장 많이 먹은 것은 잔소리와 눈칫밥이었다.


둘째 딸은 좀 더 심하게 어눌했는데 말을 시작하면 그 말이 이음줄로 길게 이어지게 말했다. 주어와 목적어가 사라진 말은 허공을 맴돌다 끝맺지 못했다.


결국 이른 나이에 가난하고 나이 든 남자에게 시집갔다. 이 일도 저 일도 해내지 못하는 천덕꾸러기로 살다가 나이 채워 시집을 보내는 것이 지옥 같은 삶에 드리워진 구원 같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결혼이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시집간 지 얼마 안 된 그녀는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한 돌을 겨우 넘기고 죽었는데, 겨울날 비닐하우스에 일하러 간 아이 엄마가 전기장판을 뜨겁게 올려서 아이를 눕히고 갔다고 한다. 난방이 안 되는 추운 방이었다.

돌아왔을 때 아이는 달궈진 장판 위에서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녀의 무지함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 밑바닥에는 아이를 향한 절박한 사랑이 있었다고 믿는다. 시부모는 헛되이 꾸짖었고 그 욕됨의 끝에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 여자의 사려 깊지 못함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툰 모정에 대해 그 근원 없는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셋째는 서울에 올라가 미싱을 돌렸고, 넷째는 공장에 취직했다. 둘은 부당한 노동과 체불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서로 기대며 웃음으로 버텼다. 넷째는 내 또래였는데, 그 애는 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지만 성격이 활발하고 명랑했다. 그들 자매 이야기는 대체로 비슷한 결을 가진다. 그들의 삶은 인정받지 못한 노동과 미뤄진 임금, 반복되는 고단함과 끝내 이어지지 못한 생명들로 얼룩져 있었다.


그들의 하루는 범인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은 채 살아졌고, 불완전했으며 법으로 보호받지 못했다. 삶은 치열하게 이어져서 스스로 운명의 그러함을 웃음으로 치환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진다.

가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정부미로 뻥을 튀겨서 먹으며 환하게 웃던 네 자매가 생각난다. 그들에게는 서로를 감싸는 끈적이는 유대가 있었고 불완전한 삶에서 꺾이지 않는 생명력을 보여 준다.


우리는 부모나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누구도 원하는 자리에서 삶을 시작하지 않는다. 무작위 한 세계에서 나는 어떤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네 자매가 서로에게 그랬듯, 삶은 비틀리고 고단해도 이해와 연대 속에서 꺾이지 않는 생명력으로 이어진다. 하여 내가 붙들 수 있는 확신은 단 하나, 수천 번 부서져도 다시 일어서는 파도처럼 담담히 살아내며 결국 웃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 한켠에 온기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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