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릴 적 살던 시골 마을이 자주 떠오른다. 마음속에 그려지는 가느다란 실마리를 잡아당기면, 수십 년 전의 기억이 강약을 달리하며 딸려 나온다.
젊은 아버지는 산을 깎고 다져서 튼실하고 맛이 좋은 밤나무를 가득 심었다. 군불 때는 연기로 마을이 차분하게 가라앉을 저녁 무렵 밤 산에서 내려다보면, 산이 뿜어내는 상쾌함은 연기의 텁텁함을 씻어 내리기에 충분했다. 불어오는 바람은 밤나무 잎과 가지를 건드려서 싱그러운 향을 모아 마을로 내리 달렸다. 낮게 올라오던 굴뚝의 연기는 형체가 없는 바람에 휩쓸리고 흩어졌다.
아버지의 밤나무는 해마다 풍성하게 열매를 맺었다. 수확 철이 되기 전이면 서른 명 정도 되는 일꾼들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인근 마을에 사는 노소의 사내들은 우리의 밤 산으로 가서 풀을 베었다. 어린애 키만큼이나 자란 풀 때문에 밤을 주울 수 없고, 배려 없이 자란 잡초들은 길은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엄마는 마을 여자들을 불러 새참을 들고 산으로 날랐는데, 그때 산길을 걸으면 싹둑 잘려 나간 잔줄기 마다 달큰한 풀냄새가 났다. 고사리 줄기에서는 고사리 냄새가 나고 망개 줄기에서는 떫은 망개맛이 풍겼다.
좁다란 길을 따라 힘겹게 막걸리를 들고 가면 늙은 사내들은 밤나무 가지 사이에 낫을 꽂아두고 모여들었다. 왁자하게 떠들며 잔을 돌리면, 땀과 막걸리가 뒤엉킨 축제의 냄새가 진동했다. 그것은 화창하고도 농밀한 삶의 가운데서 풍기는 건강하고 친숙한 것이었다. 나의 후각은 무뎌지지 않아서 눈을 감으면 그날의 분주함과 고됨이 묻어나는 사람들의 냄새를 소환할 수 있다.
가을이 되면, 어머니는 어린 나를 데리고 가서는 커다란 다라이에 앉혀놓고, 안개 자욱한 산에서 밤을 주웠다. 그리고 가끔씩 아니 자주 나의 이름을 불렀다. 소리는 안갯속에서 들려왔다. 안개는 짙고 가득해서 시야를 무기력하게 했지만, 소리만은 규칙적이고 분명했다. 말없이 밤을 까고 자루에 담고 비탈을 오르내리는 소리는 안갯속에서도 선명했다.
나는 커다란 다라이 안에서 단맛이 덜 든 풋감을 먹으며 놀다가, 산의 적막함에 놀랄 때마다 엄마를 불렀다. 엄마의 목소리는 멀리서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마음을 안심시켰고 안개는 나를 헤치지 않았다.
농도 짙은 물방울은 어린 나의 머리칼에 손등에 다라이에 차분히 내려앉아서 축축하게 젖었다. 목이 마르면 나는 손등에 맺힌 이슬을 먹었다. 심심하면 입을 벌려서 안개를 먹었다. 안개를 먹을 때는 구름 과자를 삼키는 신기한 상상을 하곤 했다.
안개는 뿌옇게 흩어져 있어서 잡기 어려울 듯하지만, 여기도 저기도 공간에 가득 채워져 있어서 혀끝으로도 잡을 수 있다. 혀끝의 안개는 단맛이 났다. 멀리 소나무 숲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단맛에 솔향이 입혀져서, 어린 나는 신선처럼 곤히 잠들었다.
두 해 전인가 시골 마을에 큰 산불이 났다. 뉴스에서 나의 살던 고향, 꽃피는 산골의 대형 화재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피하고, 헬리콥터는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연신 뒷산에 물을 뿌렸다. 연기가 뭉게뭉게 솟구치고 앞은 가을날의 안개처럼 자욱해서 눈을 뜰 수 없었다.
사람들은 멀리서도 심하게 기침했고 기세 좋게 번져가는 불길을 보며 오열했다. 우리 산의 밤나무도 새카맣게 타고 산에 자리한 아버지의 무덤에도 불길이 옮겨갔다. 불길은 종일 계속되었다. 산의 능선을 타고,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무섭게 올라붙었다.
향기롭던 유년의 풀냄새는, 매캐하고 농진한 누린내와 재가 되어 남았다. 가을날의 안개는 더는 밤 숲에 머물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안개를 반기던 나무도, 이슬을 맛보던 어린 나도 없고, 숲은 오직 검게 그을린 나무들의 비탄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