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과 들쥐

by 이채이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를 보고 있노라면, 풀과 어우러지는 살아 움직이는 작은 생명들의 호흡까지 감지되는 듯하다. 사임당은 40여 점의 초충도 연작을 남겼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하나하나의 섬세함과 아름다움, 정중동(靜中動)의 생명력과 세상의 것이 주는 친밀감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그림을 그리는 인선의 신중한 붓놀림과 고요한 화폭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들을 상상할 수 있다.


초충도 화첩을 오래 들여다보면, 오래 전의 기억들이 화첩에 스민다. 특히 ‘원추리와 개구리’, ‘수박과 들쥐’ 같은 작품은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과거의 시간을 기꺼이 받아 준다.


어릴 적 동네에서는 아이들이 모여 놀곤 했다. 나는 손위 오빠와 친구들이 노는 곳에 기웃거리며 그들이 노는 행태를 지켜보는 걸 좋아했다. 여름이 오면, 오빠는 손아래 남자애들을 모아서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다.


개구리는 얼룩덜룩 징그럽게 생긴 무당개구리와 매끈한 외모를 가진 참개구리, 작고 귀여운 청개구리까지 다양했다. 오빠들은 잘생긴 개구리를 잡아다가 나에게 보여 주곤 했다. 나는 가지밭 고랑에서 개구리를 놓아주고 찬찬히 지켜보았다.


그러나 나는 참개구리와 달리 무당개구리를 두려워해서, 발견 즉시 도망치기 일쑤였다. 이를 지켜보던 남자애들은 무당개구리 소탕 작전에 나섰다. 나는 그것이 나를 위한 그들의 선의였다고 믿었다.


손대기도 혐오스러운 무당개구리는 멀리 뛰기를 잘해서 요리조리 도망갔다. 그러나 잡히면 즉시 빈 병의 좁은 주둥이로 머리를 밀어 넣어서 스스로 기어 들어가게 했다. 남자애들은 막대기를 들고 풀숲을 헤치며 한나절을 헤매다 보면 빈 병 가득 개구리가 쌓였다.


좁은 병 속에서 개구리들은 주황색 배를 뒤집으며 발버둥 쳤고, 먼저 잡혀 온 놈이 새로 들어온 녀석에게 눌려서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졌다. 남자애들은 참담한 사태의 병 속에 오줌을 누고는 풀잎으로 주둥이를 막았다. 병에 끈을 달아 전리품처럼 감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아 두었다.


나는 참혹무도(慘酷無道)한 그들의 행태를 견디지 못하고 엄마에게 일렀다. 엄마에게 달려가며 나는 울었다. 징그러운 개구리를 싫어하면서도, 오빠 패거리들의 선의를 악의로 고발해야 하는 양심의 괴로움이 있었다.


인선도 나처럼 어릴 적 가지밭이나 꽃밭에서 개구리와 방아깨비를 만났나 보다. 그녀의 원추리와 오이가 넝클어진 그림 속 개구리를 보면 미소 지어지지만, 아이들의 장난으로 몰사한 개구리가 떠오르면 이내 마음이 조심스러워진다.


아이들은 여름밤에 참외나 수박 서리를 하곤 했다. 어린 나를 서리에 끼워준다는 것은 어느 정도 성장을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했고, 선에 도전하는 악의 행위에 발을 들이는 계기이기도 했다. 나는 호기심과 설렘, 두려움 등이 뒤범벅된 감정의 혼돈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그것은 일종의 자격시험처럼 여겨졌고, 그들의 놀이 그룹에 포함되기 위한 통과 의례처럼 받아들여졌다.


수박을 서리할 때는 여러 개를 건드리지 않고 수박 줄기를 끊어 놓지 않으며, 하나만 따는 것이 원칙이다. 그날 밤 우리는 서리에 성공했다. 달빛이 어스름한 팽나무 아래서 돌로 쳐서 수박을 쪼개고 조각을 나누어 먹었다. 나는 소속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꼈다. 꽃잎 같은 양심을 버리고 그 밤에 맛본 것은,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 걸친 묘하게 달콤했던 안온함이었다.


나는 사임당의 그림 중, 두 마리 들쥐가 수박을 갉아먹는 '수박과 들쥐'를 특히 좋아한다. 들쥐들이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빨간 살점의 수박을 손에 쥐고 먹는 모습은, 꼭 어릴 적 우리를 닮았기 때문이었을까. 들쥐에게는 수박을 훔쳐 먹으면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들은 차분하게 만찬을 즐겼다. 고요한 삼경의 밤, 달빛 환한 길을 따라 나온 들쥐들을 바라보며, 인선은 어떤 상상을 한 것일까.


이제는 수박을 서리하는 사람도, 그것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없는 냉랭한 시절이 되었다. 수박을 갉아먹는 들쥐는 더 이상 낭만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세상은 변하고 그 가운데 나 또한 서 있다. 오래전 기억들의 이어달리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러다 잠시 멈춘 곳에는 인선의 그림이 있고, 밤의 풀벌레 소리와 두손 가득 수박을 움켜쥔 들쥐, 비명횡사한 무당개구리가 그대로 존재한다.


나는 지나간 모든 일에 감사한다. 기뻐하고, 또 용서를 빈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그들의 운명에 나는 개입할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애써 변명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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