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은 울산시 울주군에 있는 모래사장에 데려다주었다. 넓은 백사장이 길게 뻗은 그곳은 진하(辰下)라고 했다. 지명의 유래를 좋아하는 나는 진하의 어여쁜 이름 뜻이 궁금하였다. 진(辰)은 용(龍)이므로, 진하(辰下)는 용이 하강하여 내려앉은 자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용이 내려앉아 배를 쓸고 꿈틀거리며 함께 구르고 싶을 만큼 모래는 곱다.
진하에서는 바다 안개가 순식간에 모래벌을 삼켜버린다. 망원경의 쓰임이 무의미하고, 희뿌연 것들이 떼로 몰려들어 해변의 거친 흔적을 묻어준다. 밀려드는 해무에 갇혀있으면 시간과 공간이 잠시 소멸한 것 같다. 먼 천상계 어디쯤에 숨어 사는 신선이 된 듯한 헛된 생각에 빠져든다.
바람을 타고 올라 하늘에서 흩어지는 연기처럼, 지면과 닿은 모든 것은 형체가 없다. 비릿한 물의 냄새는 동풍을 타고 몸에 은근하게 감긴다.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은 이내 촉촉하게 젖어 천상의 열망에 들뜬 마음을 진정시켜 준다.
진하 해변 끝에 서 있으면 바다 건너편으로 간절곶((艮絶串)이 보인다. 간절곶은 이름에 얽힌 여러 설화가 있다. 나는 망부석이 된 여자의 절절한 마음을 기억한다. 박재상의 아내가 남편을 기다린 곳이 울주군 치술령 고개라지만, 귀환을 기다리는 아내의 간절함은 그대로 간절곶에 눌어붙어 돌덩이가 되었다고 믿는다. 나에게 지명은 가슴에 와닿아 아린 향기를 풍기는 것이 때론 더 포근하게 느껴진다.
진하, 그곳에 가면 동해안 최동단에서 뜨는 해를 소망하는 간절곶을 먼발치에서 볼 수 있다.
진하 해변을 걷다 보면 모랫길을 너울거리는 파도와 그 파도를 데리고 노는 서핑족들을 만날 수 있다. 바람의 날개를 달고 물 위를 내달리는 서핑족의 환호를 지켜보는 일은 즐겁다.
해무가 농밀해지면 서퍼들은 그 속에서 길을 잃고, 망각의 바다 어디쯤에 자신이 표류하는지조차 잊어버린다. 갑자기 안개가 짙어지는 그런 날, 그들은 보드에 의지해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찾는다. 파도가 잘게 쪼개지는 곳이 사람의 땅임을 안다.
진하 바로 앞에는 명선도(鳴仙島)라는 작은 무인도가 있다. 물때를 기다려 바닷길이 열리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명(鳴)은 새소리를 연상시키고, 바람과 파도의 노래를 떠올리게 한다. 이곳 작은 섬의 주인은 갈매기가 아니고 아주 작은 도요새 같다. 그들은 주인 없는 해변에 떠밀려 온 하찮은 먹이를 주워 먹으며 살되, 뭍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총총거리며 작은 걸음으로 걷다가 뒤돌아보곤 하는데, 그 작은 새들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가끔 바위 위에 서서 간절곶을 바라보는 도요가 있다. 나의 마음과 도요의 서정이 겹쳐지는, 그 신기루 같은 순간을 사진에 남긴다. 내가 새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듯이, 새들도 나의 말을 알 길이 없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몸의 거리로 다만 추측할 뿐이다. 바람이나 파도의 전언(傳言) 또한 내게는 해독 불가하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 울림을 따라, 섬으로 발길을 옮길 뿐이다.
여름은 길어지고 계절은 철없이 늘어진다. 육지와 바다의 새들은 군집하여 진하(辰下)의 섬으로 몰려든다. 새를 따라 사람들도 무리 지어 간다. 우리는 그곳에서 해무 속 먼바다를 꿈꾸고, 바다 끝의 일출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