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숲에서

by 이채이

도시 한가운데서 새의 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는다. 새벽마다 누리는 이 호사는 울창해진 가로수 숲이 주는 선물이다. 내가 사는 양산은 택지를 개발하면서 먼저 바람의 길을 계획했다. 바람의 길은 대자연의 길이며 삶 속으로 평화를 끌어들이는 신비한 길이다.


도시의 길 그 가운데 나무가 있다. 다양한 식생의 나무가 바람의 길을 따라 숲을 이루고 있다. 조각난 땅마다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아파트를 에워싸고 있는 것은 숲으로 진화 중인 거대한 나무 군락이다. 나무들은 길로 이어지는 모든 곳에 빽빽하다. 그래서 잎이 가득한 나무마다 바람의 일렁임으로 분주하다. 이 작은 숲은 바람의 놀이터이고 새들의 집이다.


새들은 차량통행이 많은 도롯가의 가로수에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그러나 인도를 따라 늘어선 나무숲은 새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텃새는 사람의 곁에서 살고, 먼 여행을 떠나지 않는 정착민의 삶을 산다.


우리가 도시에 모여 살게 되면서 사람을 따라온 새들. 참새, 박새, 직박구리, 동고비. 이들은 도시화에 성공한 텃새들로 사람들과 가깝고 친밀하다. 새들은 가로수의 구멍이나 갈라진 틈이 있으면 그 안에 좁다란 둥지를 만든다. 지붕 틈, 전깃줄 주변 같은 협소한 공간도 활용을 잘한다. 아름다운 곤줄박이는 직박구리와 친하게 지내며 싸우지 않는다. 숲이 만들어지고 새들이 모여들면서 도시는 비로소 소생하는 자연의 일부로 인정받는다.


새들은 둥지에 사는데, 그 집을 소(巢)라고 한다. 소는 나무(木) 위에 둥지(甾)를 튼 모습을 그대로 본뜬 글자다. 알을 낳고 기르는 집이 바로 소(巢)다. 흔히 우리 몸의 난소, 정소를 말할 때 이 소(巢)를 쓴다. 나의 몸에도 당신의 몸에도 우리는 하나씩 둥지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인간의 몸에 깃든 소(巢)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인간의 내밀하고 근원적인 시류로서 난자와 정자. 가장 소중하게 보호되어야 할 것이기에 둥지 안에 넣어두었다는 설정은 다소 낭만적인 작명법이다. 난소와 정소는 인류의 씨앗을 보호하는 아늑한 보금자리인 셈이다.


숲이 품고 있는 것은 새와 바람만이 아니다. 숲은 사마귀와 여치와 매미를 불러 모은다. 한여름의 나무줄기에서 매미는 7년을 기다린 사랑을 한다. 간절한 기다림만큼 맹렬하게 울며, 밤새워 광란한다. 그 울음 속에서 생명의 힘을 느끼고, 기다림이 만든 찬란함을 상상하게 된다.


햇빛이 스며드는 숲의 나뭇잎을 들여다보면, 잎의 뒷장에 작은 알이 촘촘하다. 땅속이건 나무 껍질 틈이건,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은신처라면 어디는 알을 낳는 여치는, 특히 서늘한 풀숲을 좋아한다. 조용히 치르르 치르르 소리를 내며 리듬을 타는 여치의 울음이 숲 속에 잔잔히 퍼진다.


나는 죽은 매미를 물어가는 개미를 보았다. 수백의 개미들이 몰려와 거대한 매미를 자르고 해체해서 기어이 끌고 간다. 매미의 날개는 일개미의 이불이 되고, 동그란 눈은 조그만 거울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개미들은 연한 나뭇가지에 엉겨 붙은 진딧물을 기른다. 인간이 소젖을 짜서 우유를 먹듯, 개미는 진딧물을 길러서 그 즙을 빨아올린다. 이 모든 것은,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순환을 보여주는 낯설고도 신성한 장면이다.


인간이 심고 가꾼 숲이 바람의 길을 만들고, 그 안에 수많은 생명을 품는 것이 기쁘다. 화사한 신록 속에서 생명들이 힘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인간의 삶도 그 풍요 속에 함께 평안해지기를 소망한다. 도시의 작은 숲과 그 안에 깃든 생명의 활기를 체득하며, 우리의 일상에도 부드러운 평화가 스며들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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