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 휴식

by 이채이

하루키의 글을 좋아하는데, 그의 작품 속 '외딴집' 설정을 특히 눈여겨본다. 사람의 눈길과 발길이 닿지 않고, 산속에 고립되어 온전히 고독할 수 있는 내밀한 공간을 좋아한다. 집 한 채가 자연에서 고립무원으로 존재할 것, 혼자서 생활 가능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출 것, 그리고 아름다울 것. 그런 곳을 오래전부터 찾고 있었다.


섬진강 골짜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의 지친 마음을 온전히 치유 받고 회복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하루키의 산속의 집과 내가 겨우 찾아낸 공유부지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삶의 원초적 외로움 끝에서 발견한 깊은 공명점이랄까. 요즘은 제법 알려져서 산빛이 좋은 계절에는 많은 사람이 찾는다 들었다. 그러나 겨울이 되고 지리산이 안쓰러울 지경으로 앙상해지면 그곳은 조용해진다.


나는 모든 생명이 침잠하는 그 계절에 가서 1주일을 쉰다. 산속의 집을 지키는 주인은 아침저녁으로 군불을 때러 올라온다. 잘 마른 참나무 장작은 타닥타닥 소리를 낸다. 장작이 불씨를 받아들이고 불꽃과 어울려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산중에 머무는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마른 장작은 들숨처럼 불길을 빨아들이고 숨을 참았다가, 날숨에는 아궁이 가득 불꽃을 내뿜는다. 그 광경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바람의 소리가 들릴라치면 불길이 먼저 흔들리고 요동치다가, 마침내 바람을 타고 고래를 빠져나간다. 방은 따끈하게 덥혀지고 은박지에 싼 고구마가 달콤하게 익는다. 그러면 산속의 긴 밤이 찾아온다.


그곳의 이름은 <묘향>인데, 이름만큼 '묘한 향'을 가진 곳이다. 음습한 그림자가 없고, 사계절의 빛을 온순하게 받아내는 산골의 집이어서 언제 가도 아름답지만, 나는 산중 고독이 절정을 지나는 겨울의 그곳이 끌린다. 밤이 깊어지면 오싹할 만큼 거센 산바람이 마당으로 내려온다. 힘겹게 데려온 마른 잎과 가지들은 바람의 주문을 따라 춤을 추고, 문밖의 세수 대아를 두드린다. 밤 마당의 사태를 알 리 없는 나는 문풍지 사이로 슬며시 밖을 내다본다. 밤새 소란을 피우다가 새벽녘이 되면, 정해진 하산로를 찾아 슬며시 빠져나간다. 그제야 나는 순한 잠을 잔다. 그곳의 잠은 달고 깊다.


그곳의 산은 온전히 자연으로 존재한다.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유실산림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잡목으로 우거져서 때때로 구름을 머물게 하고, 골짜기를 따라 물을 쓸어내리고, 쉬엄쉬엄 바람의 휘파람을 불 뿐이다. 나무들은 서로를 기대고 지분거리며 제 거리 만큼의 대화를 나눈다. 대청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산중 매화의 겨울눈만이, 사람 사는 곁으로 찾아올 봄을 미리 준비하는 듯하다.


산골의 물은 사람에게로 온다. 내가 산의 계곡을 마신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곳의 상수도는 가파른 계곡의 중간쯤에 설치되어 있고, 나는 아침저녁 그 물로 차를 끓이고 밥을 짓는다. 바위 사이에 고인 물맛은 거세다.

그래서 차를 위해 물을 덥히는 것을 ‘삶는다(烹)’고 표현하는 것이리라. 억센 물은 가볍게 끓여서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오래 삶아 그 강함이 부드럽게 풀리게 해야 한다. 그것이 차 맛에 순응하는 물의 도에 가깝다. 산중의 녹차는 그렇게 우려진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 가면 밤새 음악을 듣는다. 평소 조바심에 듣지 못하던 긴 교향곡 연주를 오래오래 들을 수 있다. 전 세계의 저명한 연주자부터 지휘자, 가수까지 모두 초청받는다.

두꺼운 책을 잔뜩 챙겨서 간다. 따끈한 아랫목에서 고구마를 입에 넣고 글을 읽는다. 한밤의 만남이 좋아서 혼자서 까르르 웃는다. 한밤의 녹차를 좋아하진 않지만, 밤이 긴 이곳에서는 아무래도 괜찮다. 찻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가끔 항아리를 열어볼 뿐, 그것이 유일한 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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