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비가 내리고 아침은 구름이 끼었다. 서늘한 바람이 방안까지 스며드는 것이, 가을을 이미 곁에 와있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 수면을 가득 덮은 가시 수련을 보았다.
이곳 양산 범어 펌프장의 가시 수련은 자연 번식의 힘으로 제스스로 피어났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물 없이 비워두었던 공간에 물을 채워 넣자, 어느 순간부터 한 송이씩 피어나던 가시연꽃이 이제는 온 연못을 가득 채웠다. 도심에서 멸종위기 야생식물로 지정된 가시연 수천 송이가 피어나는 광경은 경이롭다.
가시연은 쟁반만 한 어린잎부터 돗자리만 한 거구의 잎들까지 모두 수심에 뿌리박고 수면에 부유한 채 고정되어 있다. 그들의 부유는 흔들림으로 읽히지 않는다. 연잎을 밟고 선 왜가리의 한가함은 위태롭지 않고, 단단한 개천 땅에 선 것처럼 여유롭다. 가시연의 잎에는 선인장의 그것과 닮은 가시가 돋아있다. 수억 년의 숨 막히는 진화의 끝에 선택한 가시를 그저 흔하디 흔한 장미의 가시처럼 여겨도 되는 걸까?
가시를 잔뜩 단 연잎은 크고 두텁고 주름지다. 모네의 연못에 있던 그 자그맣고 연약한 수련의 잎과는 역사의 궤를 달리하는 듯하다. 뒤집힌 연잎에는 중심부에서 뻗어나가고자 애쓰는 생명의 힘이 있다. 수면을 점령하며 초록의 가시 융단을 짜는 동안, 물에 접한 잎의 뒷면은 하늘의 빛과 물속뿌리에 교신을 주고받으며 거칠게 진화했다.
가시연 수천 잎을 한눈에 담고 있으면 순간 어지럼증이 온다. 그 근원은 잎을 뚫고 기어이 나온 보랏빛 연꽃 때문이다. 저 자그마한 꽃 한 송이를 내놓으려고 머리를 쳐들고 두터운 가시 잎을 찢었다. 긴 잠수에서 이제 막 첫 숨을 쉬는 꽃봉오리는 오래오래 하늘을 본다. 너도나도 고개를 들고 물 밖에서 호흡한다. 그들의 호흡은 신성해 보인다.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수천의 신도들처럼 봉오리들의 예배는 간절해 보인다. 참아왔던 숨을 내뱉고 나면 어지럼증은 사라지고 살고 싶은 충동에 맹렬해진다. 그렇게 며칠간 피고 오무리기를 반복하며 지상의 낙을 누린다.
귀한 가시연이 사는 곳으로 창녕 우포늪이 있다. 그곳에서는 가시연꽃이 핀 2024년에 '백 년 만에 피는 꽃'이라며 언론을 통해 격하게 반응했다. 그만큼 소중히 여긴다는 의미로 읽힌다. 발아 조건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가시연 수천 송이가 태연하게 수면을 점령한 이곳 양산은 하늘의 축복을 약속받은 듯한 기분이 든다.
가시연이 어떻게 이곳에 흘러오고 자리 잡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예전부터 흙 속에 묻혀있던 씨앗 하나가 어찌어찌 발아한 것일 수도 있고, 어디선가 연밥을 주워 먹은 왜가리가 이곳까지 날아와 배설한 것일 수도 있다. 씨앗은 외피가 단단하여 쉽게 썩지 않고 오래 보존되는 특성이 있다. 비어있던 공간에 물을 가두는 인간의 우연한 행동에 가시연의 씨앗은 반응하였다. 이 모든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필연적으로 이곳에 피어있다.
연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700년 전 고려시대의 연 씨앗이 세상에 발굴되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2009년의 일이다. 외피가 온전히 남아 있던 일부 씨앗을 골라 발아 실험을 했는데, 그중 3개의 씨앗이 발아했다. 애지중지 씨앗을 키워낸 연구팀은 1년 후에 마침내 700년을 기다린 연꽃을 피워내고야 말았다. 발굴지인 함안의 옛 이름인 아라가야(阿羅伽倻)의 이름을 따서 '아라홍련'으로 세상에 얼굴을 들었다.
연꽃들은 생명의 힘이 끈질기다. 그들은 기필코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를 씨앗의 DNA에 새겨놓았다. 씨앗이 새들의 먹이가 되건 진흙 속에 갇히건 그들은 자신의 미래를 염려하지 않는다. 수없는 낮과 밤을 보내고, 수백의 계절이 지나더라도 조바심 내지 않는 그들은, 무료한 시간을 고요하게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온통 자기 자신인 채로 만개하여 피워낼 그 순간을 기다리며 인내하고 있다.
가시에 찔리고 아픈 청춘들에게 말하련다. 수백 년을 기다린 아라연꽃처럼, 거대한 잎으로 번성하는 가시연처럼, 우리도 곧 숨쉬기 힘든 물속을 벗어날 것이라고. 활짝 열린 꽃잎이 만개한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라고. 그리고 마침내 단단한 씨앗을 품은 소중한 하나의 우주로 빛날 것임을 잊지 말라고. 그리 말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