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고리를 가진다

by 이채이

사람마다 자기가 편애하는 낱말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나무'라는 단어 앞에서는 확실히 편애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무 그늘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 <보릿고개를 넘어온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는다. 그럴 때 나는 기근으로 '감잣고개'를 넘지 못해서 죽고, 미국으로 이주한 아일랜드인들을 생각한다.


8년 대기근은 결국 굶주림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역사로 남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다. 오래전, 팔베개를 하고 등을 쓰다듬어주며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신 할머니, 끈질긴 생명의 나무들 그리고 꿋꿋한 삶에 대해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나에게 조상들은, 할머니와 같은 위상으로 기억된다. 그들은 빈 땅을 놀리지 않았다.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드러나면 어김없이 흙을 채우고 채마를 심고 가꾸어 먹었다. 집 근처에 무용지목(無用之木)은 없었다. 집 주변에는 이름도 예쁜 갈참나무나 떡갈나무를 심지 않는다. 매화나 감나무, 오얏이나 살구, 밤이나 대추 등을 심는다. 계절마다 제 색을 빨아올린 나무들이 뿜어내는 꽃들과 열매의 향연은,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실리를 주고 배고픔의 환각을 잊게 한다.


"나무는 뭘 먹고살아?"

어릴 적에 할머니께 물은 적이 있다. 찬밥에 물을 말아서 식사를 하던 할머니는, 나무는 흙을 먹고 산다고 했다. 흙이 메마르면 목이 메어 그냥 삼키기 힘들다고, 그래서 물에 찬밥을 말듯이 빗물에 흙을 말아서 먹는다고 했다. 나무는 비가 올 때마다 흙을 잘 먹어서 키가 큰 거라고 했다.


인간은 먹지 않는 저 더러운 흙을 먹고, 눈부시도록 여리고 뽀얀 꽃을 피우는 나무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어디 나무뿐일까? 검은 흙밥을 먹고 자란 수박이 붉고도 푸른 영롱한 빛깔과 저만의 단맛을 온전히 몸 안에 품는 것이 어찌 신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과 경쟁하는 종들은 먹고 먹히는 사슬의 접점에서 만난다. 난폭한 자연의 이치에 맞서 다투고 밀치면서 마침내는 승리를 입증해 온 인간의 역사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공존의 이름으로 손을 잡은 것은, 역한 거스름 없이 오로지 제 홀로 우뚝하면서도 서로를 이롭게 하는 식물이다.


인간의 버려진 오물 덩어리를 그 하찮게 버려지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경쟁의 구도 없이 인간 속으로 걸어 들어온 이들이 바로 식생(植生)들이다.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집을 둘러싼 온갖 식물을 대할 때, 나는 온순하고도 평화로운 그들의 삶에 잠시 들어앉았다 나온 아이마냥 온통 초록의 기쁨으로 편안해진다.


할머니는 집 주변에 다양다색(多樣多色)의 나무를 심었다. 결실이라는 이름으로 보답하고 주저 없이 인간 삶에 끼어드는 과실수들. 뿐만 아니라 아픈 몸을 추스르게 하고 다독이는 엄나무와 산짐승의 침입을 막는 가시나무까지. 모두 삶의 필요충분조건을 채우는 것들이었다.


거의 유일하게 목적 없이 심어진 게 있었으니 거대한 은행나무 수놈이었다. 나는 거인 나무라고 불렀다. 거인 같은 위엄을 지닌 은행나무는 당당하고 품위가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집까지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우리 집을 지키는 신성한 솟대 같았다. 가을이면 장독대에 쌓인 은행잎은 두 발이 푹푹 빠지도록 두텁고 포근하고 푹신했으며, 그것은 나의 자랑이었다. 지상 놀이터에 온전히 내린 가을의 눈처럼 절대자의 선물 같은 구석이 있었다.


쓸모없을 것 같았던 은행나무는 어린아이의 상상력을 팽팽하게 당겨 올린 활과 같았다. 나는 이십 미터는 족히 넘을 그 곧은 몸통을 보며 신들의 빨대를 생각하곤 했다. 종일토록 놀다 목이 마른하늘의 신이, 입술을 꽂아 물을 빨아먹는 신들의 빨대. 그 상상을 하면 뿌리에서부터 가지 끝까지 가득가득 물이 차올라 나무는 더 싱싱해 보였다. 쏘아 올린 화살처럼 단번에 목마름을 달래줄 것만 같았다.


가을이 되면 수천수백의 빛 광선을 온몸에 흡수한 나무는 그대로 황금빛 노을이 되었다. 빛 조각은 뜨겁지 않고 먼 꼭대기서부터 성큼성큼 지상으로 내려온다. 뜰의 안개를 걷어내고 구석구석까지 파고든 햇살이 더는 갈 곳이 없을 때면 할머니 곁에 앉아서 토란대를 다듬고 고추 말리는 일을 거들었다. 은행나무는 가을의 빛을 오래 머금었다.


"할머니, 과자가 열리는 나무는 없는 거야?"

"할머니, 나무는 왜 못 걸어 다니는 거야?"


이제는 하소연 같고 허황스러운 질문에 답을 구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서른 해도 더 전에 할머니는 신들의 곁으로 갔고, 신들의 빨대도 이제는 베어지고 없다. 하지만 인간이 가꾸는 나무는 어찌 된 일인지 세월을 무시한 채 그 크기나 모양새가 한결같다. 나는 지금도 할머니가 심어두신 나무의 혜택 속에서 살고 있음을 느낀다.


물 한 바가지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나무 곁에 뿌려 흙밥을 말아주던 그 정성을 아직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제자리를 지킨 나무를 보며, 나는 자꾸만 할머니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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