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자, 나는 몇 해 전 불타버린 숲에 다시 가보았다. 시골 마을, 불이 일어난 밭에서부터 옮겨 붙기 시작한 불씨는 거침이 없었다. 요동치는 바람을 타고 솔방울은 이 산 저 산으로 폭죽마냥 튀어 올랐다고 그 무서움을 전했다. 산불을 진화하려는 소방대원들도 사방에서 타오르는 불의 길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산골의 길은 비좁고 가문 날씨에 개천은 메말랐다.
성급하게 번지는 불길은 불완전 연소했고, 연기는 하늘까지 덮어서 지옥을 연상케 했다고 늙은 엄마는 가까스로 말하며 울었다. 매캐한 냄새는 날카롭게 폐를 찔렀다. 전국에서 몰려든 헬리콥터가 먼 댐에서 필사적으로 물을 퍼다 뿌렸다. 사람 사는 마을은 물에 젖었고 불길은 겨우 외면하듯 물러났다. 늙은이들만 남은 산골 마을, 산불의 기세에 눌린 사람들이 더 허망한 낯빛으로 참혹 현장을 목도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불벼락으로 두 개 면 10여 개 마을이 피해를 입었다.
어머니의 숲은 검게 죽어있었다. 육신의 뼈가 검게 삭아 내리듯 불꽃에 그슬린 나무들은, 제각기 서서 바람에 반응하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가 가꾸었던 유실수의 숲은 더는 봄을 맞을 수가 없었다.
물오르지 않는 나무와 사람으로 손으로 색칠할 수 없는 자연의 초록은 동시에 오는 것인 줄 안다.
나무의 뿌리가 기력을 잃어 입을 열지 않고, 물 한 방울 빨아올릴 수 없는 것은, 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신의 저주처럼 느껴진다.
산속 다람쥐나 청설모는 도망치다 불타고, 날개 달린 것들은 먼 산으로 간신히 달아났다. 죽은 자들의 무덤까지 불의 혓바닥이 가만두지 않았고, 마침내 아버지의 무덤마저 민둥머리로 만들었다.
봄빛 구경에 나섰던 나는, 타버린 숲에 손을 뻗치는 은 초록빛의 고사리를 보았다. 저승의 땅 같은 무채색의 산에 고사리는 희망처럼 삐죽삐죽 솟아오르고 있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태어난 태초의 씨앗처럼 신성해 보였다.
기대했던 진달래는 죽어서 재가 되었다. 비가 내려서 검게 그을린 나무와 땅바닥을 씻고 또 씻어 내렸다. 숯덩이가 된 나무는 발길질 두어 번에 바스라지고 쪼개졌다. 쪼개진 틈 사이에서 검은 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 어둠의 물이 땅속에 스며서 눈부신 희망의 물방울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진달래도 할미꽃도 청솔모도 없이 산은 봄을 맞았다.
산이 불에 타고 꽃 한 송이 없이 봄을 지나는 이 거대한 불행 앞에, 잘 차려입은 다정한 업자들이 나타났다. 돈 냄새를 잘 맡는 업자들은 음료와 과일, 타버린 산과 능선의 지도를 가지고 왔다. 지도에 빗금을 그어대며 골프장 조성과 마을 주민의 복지에 대해 연신 강변했다. '전화위복'이라고 사람들 마음을 붙잡고 열성적으로 설득했다. 그들의 말은 논리적으로 타당했지만, 그 설득이 내게는 기운 센 독촉으로 느껴졌다.
타버린 산과 무덤, 더 이상 오지 않는 계절 앞에서 골프장 조성 사업은 너무도 거대한 담론처럼 다가왔다. 그들의 외침은 귓바퀴에 뱅그르르 머물기만 할 뿐, 귓구멍으로 쏙~ 파고들지 못했다. 마음은 이해를 피해 몸을 웅크렸다. 꽃피던 산골에 봄이 다시 오려면 골프장이 들어선 다음쯤이 될 것인가?
상냥한 업자들이 던져 놓고 간 주사위는 경우의 수만큼, 주민들의 마음을 이리로도 저리로도 휘저어 놓았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령의 사람들도 모두 한 마디씩 보탰다. 죽음의 고개를 넘은 삶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올봄은 연둣빛을 보지 못했지만, 숲이 제 나름의 생명력을 회복하고 봄맞이를 하려면 이십 년은 넘게 걸린다고 한다. 팔순 노모 살아생전에, 진달래 피는 숲을 뛰어다니는 청설모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면 마음이 어지럽고 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