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일기

-다람이의 집에서

by 이채이



나는 달빛과 햇살이 은근한 교접을 시도하는 순간에 깨어 있다. 흐르는 물을 손으로 떠서 마셔본다. 정신이 번쩍 나도록 차다. 이 순간 나는 자연의 일부가 된 것 같다.


산속의 새벽은 차고 희다. 손바닥 창을 통해 잔 빛이 스며든다. 숲은 하늘부터 밝아온다. 땅에 속한 것들이 아직 잠에 취해 눈을 가물거릴 때, 하늘을 통해 밝음이 통째로 번져온다. 땅에 속한 것은 소리로, 하늘에 속한 것은 빛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산에서 아침을 맞을 때 땅과 하늘의 조화를 호흡한다.


밤과 아침의 경계는 해와 달의 운행으로 건너오는 것이 아님을 안다. 밤이 아침으로 넘어오는 일상은, 파스텔을 문질러서 농담의 차이를 없애고 캄캄한 가장자리를 말없이 지우는 것과 비슷하다. 어둡던 색상이 한 톤 밝아지고 밝아지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어둠은 사라지고 하루의 첫 빛이 문턱에 와 있음을 안다.


어둠이 빛으로 자연스레 소멸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오늘이 태어나는 찰나가 바로 이 순간임을 흰 달이 말해준다.


숲에 있으면 해는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스미면서 밝아지는 것이다. 어둑하던 땅이 제 색을 찾을 무렵이면 이미 동은 트고 새들은 제 노래를 찾아 지절거린다.


산속 나무 위의 집은 다람쥐의 작은 둥지 같아서 홀로 박혀 지내기에 맞춤하다. 이팝나무와 버드나무, 온갖 상수리들이 제 맘대로 자라는 곳에 다람쥐의 쳇바퀴를 닮은 집은 공중 부양한 채 떠서 한껏 가볍다.

크고 단단한 세상의 집을 두고, 중력을 거스르고 공중에 떠 있는 자연의 집에서 위로를 얻는 것은 현대인의 아이러니다. 어쩔 수 없는 궁여의 대책이다.


도시의 아파트는 삶이라는 중력을 거스르지 않고, 매래라는 꿈에 순응한다. 그런 하루하루가 잠들기에 적합해 보인다. 고단한 하루를 쉬게 하고 내일로 자연스레 건너뛰게 하는 분주한 전환 기지로 제 역할을 하는 듯싶다.


도시에서는 밤을 지우는 새벽의 부지런함을 찬찬히 느낄 수 없다. 그저 창밖에서 스며드는 오늘을 수 초간 바라볼 뿐이다. 그러는 사이 도시는 자동차의 뒤뚱거리는 소음이 도로를 채우고 그마저도 다 메워지면 아침이 온다 여기는 것이다.


밤새 멈추지 않던 풀벌레 소리는 여지껏 기세를 떨치는 매미의 데시벨 앞에서 순간 사라져버린다. 이른 시간부터 맹렬하게 구애하는 매미의 순애보 앞에서, 가을의 벌레들은 아침을 내어주고 조용히 어둠을 기다리는 것 같다. 낮과 밤의 세계가 다르듯, 밝음과 어둠을 대하는 벌레들의 처신은 나름의 규율이 있어 지혜로워 보인다.


산속 다람이의 집에서 든 잠은 깊고 평화롭다. 눈은 어둠을 따라 흐르는 광활한 시간의 밤을 함께 건너가기 때문이다. 도시의 밤은 밝아서 온전히 잠들 수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불빛에 산란하던 동공은 움직임을 멈춘다. 깊이 잠 속으로 빠져들어 마침내는 꿈도 없는 잠을 잔다. 이때 비로소 육신은 사지를 펴고 뼈마디마다 속이 꽉 찬 잠의 에너지를 전달해서 내일을 살게 한다. 숲과 밤 그리고 어둠의 조화는 사람을 살게 한다.


바위를 돌아 물이 굽이치며 소리를 만든다. 약수에 발을 담근 물봉숭아는 시린 발을 바위에 기댄다. 찬 손으로 꽃을 말린다. 잠을 자면서도 물봉숭아가 바위와 속삭이는 소리는 지겹지 않다. 산중 추위에 발이 시린 내 곁에서 물장구치던 꽃들은 아침이 되어 더욱 싱그럽게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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