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루 여행

-섬진강

by 이채이

섬진강을 여행하고 있다. 섬진강은 남도의 강이고 생활의 강이다. 우리의 할머니의 할머니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사람들은 강을 마주하며 뱃길로 왕래했다. 등짐 져 온 나물을 건네고 반짝이는 강 빛을 나누며 살았다.


하류의 넓은 강폭에는 완만한 모래가 쌓여 강을 조인다. 수량이 부족할 때는 허리를 바싹 조였다가, 비가 내려 골짜기마다 물을 쏟아낼 적엔 모래는 물속 깊이 잠겨서 적셔진다. 강의 모래를 막대기로 파보면, 그 안에 또 강이 있고, 강 안에 또 생명이 있다.


섬진강의 조개 이야기를 하자면, 엄지손톱 만한 조개를 재첩, 지역 말로 ‘갱조개’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강의 밑바닥을 긁고 훑어서 이 작은 조개를 잡아 생을 이어간다. 이 손톱 조개는 하류의 모래 속에 모여 산다.


그러나 강의 흐름을 조금 거슬러서 올라가 보면 안다. 물살이 세지 않고 모래와 자갈이 섞인 곳에 얕은 수심의 강이 또한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곳에 아이의 손바닥만 한 조개가 살고 있는데 가막조개라고도 한다. 동전만 한 조개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크고 실하다. 잘 자란 홍합만 한 크기로, 강 중류의 돌과 자갈 틈에 박혀 한가롭게 살고 있다.


그들의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마도 타고난 위장술과 강의 접근 난이도에 있지 싶다. 가막조개는 돌멩이와 자갈 사이에서 납작 엎드린 채 숨을 참고 그대로 돌멩이가 된다. 그러나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은 한 방울씩 올라오는 공기 방울을 보고 조개의 움직임을 알아챈다. 이들은 센 물살을 싫어해서 강의 가장자리에서 산다.


손바닥 조개는 일단 한 마리를 발견하고 나면 그 일대는 말 그대로 노다지다. 발을 담그고 조개를 줍는 것은 어찌나 신나는 일인지. 한 자리에서 소쿠리 하나만큼은 금세 채울 수 있다. 강가 사람들은 큰 조개로 탕을 끓이거나 찜을 해 먹는다. 관광객이 몰리는 유명 식당에서는 좀처럼 본 적이 없다. 손톱만 한 재첩이 알려진 만큼 큰 재첩 조개는 알려지지 않았기에, 그들의 화평은 오늘도 유지되는가 보다.


섬진강이 섬진강이기 전에는 모래강이라고 불렸다.

“다사강(多沙江)이 현의 서쪽에서 흘러나와 남쪽으로 향한다”라고 세종실록지리지 구례현 편에 기록되어 있다. 세종대왕 살아 계실 적에는 다사강이었다가 이후 섬진강으로 자연스레 이름이 바뀌었다. 섬진강(蟾津江)은 두꺼비 나루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자로 두꺼비 섬(蟾)을 쓴다. 강 하류의 두툼한 모래톱이 두꺼비를 닮았다고도 하고, 강가에 두꺼비가 많이 살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곳에 나루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 섬진이었다.


강이 흐르듯 세월은 가버리고, 나는 남겨진 이름을 붙잡고 산하로 분절된 강의 세속성을 생각한다. 지리산에 비가 내리면, 산자락의 나무뿌리는 바쁘다. 잔뿌리를 적시고 약초의 향취를 거두어서 뭉쳐진 물방울은 스스로 응집해 더 큰 물을 만든다. 방울 방울이 모여 산의 중턱에서 고이고, 고인 물은 마침내 쏟아져 내린다.


제각기 떨어진 물줄기는 작은 내를 이루고 가파른 상류의 바위에 부딪히고 깨지면서 정신없이 돌아서 나간다. 그곳에 천년의 야생 차나무가 자라고, 산골짝의 다람쥐가 놀고, 사나운 물이 산다. 그 물은 진정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깨부수며 하류로 그저 던져진다.


한바탕 전쟁처럼 요동치던 물이 강에 도착하면 마침내 물살은 진정된다. 강은 물살을 다독이고 숨 고르기를 한다. 물은 두꺼비의 나루에 이르기 전에 모두 평온을 맛본다. 빗물은 골짝을 흘러 강이 되었다가 마침내 바다로 간다.


섬진강이 광양만의 바다와 만나는 곳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김 시식지가 있다. 우리가 먹는 김밥의 그 김, 맞다. 약 400년 전,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이 '해태'라 불리는 해초를 최초로 양식하는 데 성공했고, 그분의 성을 따서 ‘김’이라 불렀다. 언젠가 아이가 말했다. 만약 박 씨가 양식했더라면 지금은 ‘김밥’이 아니라 ‘박밥’이라 불렸을 거라고. 그 순진한 농담에 아직도 미소가 지어진다.


김 양식은 섬진강 하구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제철소가 들어선 지금은 더 이상 김 양식을 하지 않는다. 태인도에 ‘김여익’을 기리는 소박한 '김 기념관'이 있을 뿐이다.

언젠가 지인에게 들었던 고향 이야기. 언 손을 불어 가며 김을 발에 떠서 말리던 겨울날 일상에 대한 것이었다. 그의 고향이 이곳이다. 김밥을 먹으면 나는 자연스레 완도가 아닌 하동 일대를 상상한다. 따갑고 쌀랑한 햇살 아래서 김을 말리는, 아직은 놀고 싶은 아이를 떠올린다.


지리산 계곡의 거친 물안개에서 하동의 녹차가 자라고, 칠불암에는 성불을 고대하는 스님들이 수도한다. 하여 산은 신성을 품은 땅이다. 그러나 물줄기가 툭 트인 마을로 내려오면 속세의 강이 된다. 느린 물에 숨어 사는 손바닥 조개나 하류의 재첩을 떠올리는 것은, 먹고사는 것이 숙명인 우리를 기쁘게 한다. 강이 흘러 마침내 바다에 닿으면, 헝클어진 실 같은 희망을 발에 담아 가지런한 말리던 사람들의 삶이 있다.


강줄기의 모래를 털어내고 비릿한 바닷바람을 뒤로하면, 육지 끝 거대하게 솟아난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굴뚝이 보인다. 섬진강에 가면 김밥을 먹고 재첩국을 마시면서, 두꺼비 나루의 강을 다시 한번 바라보라. 우리는 모두, 얼마간 자연에 빚졌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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