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나를 30년 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기필코 '강기남'이라는 사람을 만나러 갈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강기남은 나보다 4살 많은 선배였다. 같은 과는 아니고 자연과학계열 어디쯤에 적을 둔 여자였다. 그녀는 2학년을 다니다 긴 휴학 중이었기에 우리의 만남은 비교적 오래 지속되었다.
그녀는 찹찹한 단발머리에 큰 눈을 가졌고 온 얼굴에 자잘한 반창고를 많이 붙였다. 다리를 절었고 장시간 걷거나 움직이는 것은 무리인 것이, 두 해전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수술은 여러 차례 오랜 기간에 걸쳐 반복되었다. 부서진 뼈를 그러모아서 굳히고, 일그러진 얼굴을 펴서 다듬는 아프고 지난한 시간의 터널 한가운데 그녀가 서 있었다.
내가 처음 그녀의 자취방을 찾아간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불도 켜지 않은 컴컴한 방에서 방문을 열어 보이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추운 날이었고 볕은 나지 않았다. 눈이 왔는지 아니면 눈이 오려고 했었는지, 내부의 어둠이 유독 진하게 각인된 것은 안에서 번뜩이는 그녀의 눈 때문이었을 것이다. 살아있는 것이 컴컴한 동굴에 갇혀 오로지 살겠다는 의지로 영성을 채우는 느낌이었다. 크지 않고 빠르지 않은 무언가가 문밖의 기척을 알아채고 문을 열어 주었다. 거기에는 한 마리의 살고 싶은 짐승이 있었다.
내가 짐승이라고 말한 것은 그녀를 낮추어 부르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녀는 엄중한 생명력으로 검게 빛나고 있었다. 진짜 많이 아픈 짐승은 스스로 곡기를 끊고, 암흑으로 들어가서 웅크리고 아픔을 견딘다. 치유가 끝난 후에 비로소 제 발로 걸어 나와 사냥한다. 그녀의 눈에서 야생의 자취를 보았다.
그녀는 너무도 다정했다. 배고픈 나를 위해 연탄불에 김치찌개를 덥혀주었다. 보온 밥솥의 밥과 끓고 있는 김치찌개, 들기름과 소금을 단정하게 뿌려서 구운 김을 내놓았다. 나는 고소하고 짭짤한 김에 밥을 싸서 먹으며 상처의 골을 따라 여러 겹의 반창고가 붙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밴드는 상처 위의 조각천처럼 조화롭고 때로는 그것이 그녀의 정체성 같아 보이기도 했다. 반창고 없는 얼굴을 상상하기 힘들었고, 그녀를 떠올리면 반창고 붙여진 형체가 어른거렸다.
그녀의 웃음에는 눈물 같은 짠기가 있었고, 우리는 그날이 처음이었다. 초면의 후배에게 불편한 몸을 움직여 차려 준 그날의 밥상을 잊기 힘들다.
그녀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었는데, 갑작스런 사고로 계획은 무산되었다. 인생의 설계도에는 없었던 그녀의 사고는, 무덤까지도 약속할 만큼 굳건했던 사랑을 스스로 돌려세우게 했다. 두 다리로 온전히 걷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 글을 읽을 수도 없는 불구의 몸은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 단념하도록 다그쳤다. 혼기를 넘긴 남자는 육신이 성성한 다른 여자와 결혼했고, 그 가정은 단란함과 평화를 가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병신 된 그 몸으로 그 누구를 만나는 일은 단념했다. 그녀는 과거의 사람만 만났고, 과거와 연결된 사람들의 지인만을 만났다.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은 범위의 인연만을 추구했다.
마음을 여러 칸으로 나누어 감정을 수납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별도의 칸막이가 없었다. 늘 사랑하는 사람으로 가득 차고 넘쳐서 범람할 뿐이었다. 그녀에 대해 말할 때 '불구와 자기 남자' 이 두 가지 키워드를 빼버리면 형용모순에 빠진다.
몸이 불편한 그녀는 '남과 결혼한 자기 남자'를 만나서 사랑했다. 뭇사람들에게는 불륜이겠지만, 본래 자신의 것이었던 사내를 만나고 사랑하는 것에, 거추장스러운 이름을 붙이지는 않은 듯했다. 이것이 그녀가 낸 최고의 용기였다고 믿는다. 다른 여자의 사내가 된 자신의 남자를 만나는 것이, 그녀가 누릴 수 있는 마지막 낭만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보내버린 사랑을 회복하는 것. 어쩌면 그녀를 살아있게 하는 유일한 이유였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남자는 사랑과 평화 사이에서 그런대로 안착해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내가 대학 졸업반이던 어느 가을밤에 전화벨이 오래 울렸다. 벨 소리는 전화하는 사람의 마음을 닮는다고 했던가. 다급하면서도 망설이고 싸늘하면서도 불안한 벨 소리가 빈방에 쏟아졌다. 예감이라고 하나? '불길'이라는 이름을 한 직감.
전화선의 눅진한 진동을 따라 그녀는 나지막이 말하고 있었다. 내일 병원에 가야 하는데 보호자가 없다는 것이었고, 그녀의 설명은 길지 않았다. 축소된 지도만으로도 실물의 땅을 짐작하듯이, 몇 마디 말로도 펼쳐서 하고 싶은 말을 더듬을 수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울적했던 것 같다. 마음을 주물러서 슬픔의 근원과 구멍 난 가슴을 모조리 메꾸려는 듯 울렁거렸던 것 같다. 그녀의 마음결을 따라 나는 덩달아 멀미를 했던 것도 같다.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고, 보호자가 되지 않았다. 여렸고 어리석었고, 두려웠고 또한 비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전화해서 보호자를 찾았을까? 그녀의 기억에 가을이 뻥 뚫려 커다란 공백으로 자리 잡진 않았을까. 그 가을 안에 이기적인 나는 빈자리를 통으로 차지하고 앉아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가야 할 곳에 가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오랜 기억이 지독히도 명멸의 끄나풀을 잡고 흔들어 댔다. 그날의 일은 긴 세월 후회로 남았다.
서너 해가 지나고 우연히 그녀의 절친한 지인을 만나게 되었다. 보고 싶은 마음에 불러 본 그녀의 이름 뒤에 따라온 것은 '운명하였다'라는 실타래였다. 작년 겨울에 죽었다는 것이었다. 운명의 실타래는 그녀에게는 길지 않았던가 보다. 나는 그 슬픔에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해 허둥댔고, 자주 말을 더듬었다.
그녀는 고단하고 지루하기만 한 삶, 사랑도 소유하지 못하고 사랑의 결실도 버려야 하는 이 모순의 땅을 등졌다. 정신이 멍해진 나는 후회의 곱절만큼 더 자책했다. 만약 그녀가 보호자가 없다는 핑계로 잉태한 생명을 보전하고 끝내 잉출(溢出)했더라면 어땠을까? 그 아이가 태어났다면, 그녀는 살아있을 이유를 얻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희망이 되어 살아있지 않았겠냐고 생각해 본다.
그 해, 사랑의 흔적이 지워진 그녀에게 살아갈 이유가 남아 있었을까. 병원 대기실에 앉아 번호표를 받고, 생명을 떠나보낸 밤, 이미 그녀는 자신의 숙명을 예견했던 건 아닐까?
세상과 싸움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빈자리의 쓸쓸함을 받아들이고, 조용히 스스로 물러났다. 임종을 단둘이 함께한 지인은 그녀의 마지막 말을 전해주었다.
그것은 "죽은 내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라는 다소 소녀적인 말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기억에서 지웠다. 그녀 나이 서른이었다.
만약 3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그녀에게 아이를 낳자고 설득하고 싶어진다. 준비도, 대책도 없었지만, 그 생명이 그녀에게 살아갈 이유를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생명의 힘으로 가득 찬 아이가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덧없는 희망을 품어보는 것이다. 그 아이가 이제 서른을 바라볼 텐데, 나는 그 아쉬움을 가슴에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