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신록이 더 이상 신록이 아닌 진록으로 물들던 계절이었다. 마을 초입의 언덕배기에는 순한 콩잎이 바람의 골을 따라 물결쳤다. 가파른 산밭을 따라 이제 세를 형성하기 시작한 청대가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군가의 기척에 놀란 산꿩들이 ‘꿔어~꿔꿔’하며 잽싼 날갯짓으로 무리 지어 날아갔다. 따뜻했고 평화로운 날이었다.
나는 물이 차오른 개울가에서 피라미를 잡는 어른들을 보고 있었다. 양동이를 든 사람과 ‘감전기’를 매고 멀리 물고기를 향해 스위치를 누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요리조리 피하던 작은 물고기들은 전기에 찔려, 싱싱하던 부레를 잃고 무방비로 부상했다. 은빛 비늘을 번뜩이며 경쾌하게 물속을 누비던 피라미는 여지없이 배를 뒤집었다. 잔잔한 수면 위에서 배는 희고 둥글었다.
순간, 부레를 잃고 물에 뜬 물고기처럼 아버지는 물에 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따질 겨를도 없이, 양동이에 피라미를 주워 담던 사람들은 소리치기 시작했다. 몰려있던 이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무거워진 아버지를 물속에서 건져왔다. 마을 맨 꼭대기의 우리 집까지 소리는 가쁘게 내달렸고, 울음소리보다 빨리 어머니는 달려왔다.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초록 무늬의 원피스를 입은 어머니가 나의 망막에 상을 그렸다. 한 번 그려진 그것은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왜 하필 그 푸른 원피스가 기억에 남는 것인지, 기억의 의도를 알 길이 없는 순간은 아프다. 일생동안 지울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것은 아마도 이런 찰나가 아닐까. 물에서 건져낸 죽음과 죽음을 맞닥뜨리는 자의 묘한 생명감이 초록 속에서 꿈틀댔다.
누군가가 손수레를 끌고 왔고, 아버지를 그 위에 눕혔다. 키가 작은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젊은 아빠를 겨우 보았다. 하늘을 보고 있던 그의 머리는 검었고, 갓 면도한 수염이 푸릇하게 자라있었다. 고개를 든 하늘가에 구름은 천천히 이동했고 콩잎은 산밭에서 나풀거렸다.
이 모든 것은 아주 천천히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시간은 슬로모션으로 촌각을 또박또박 기록하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짚으로 만든 가마니를 가지고 와서는 아버지를 덮었다. 그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시간은 혼란스럽게 엉키면서 움직였다. 시간이 공간과 뒤섞이는 듯했다. 누군가가 리어카를 끌고 밀어서 바삐 집으로 실어 갔다. 나는 나무 수레를 잡고 따라가며 들썩거리는 아비의 손을 보았다. 핏기를 거둔 크고 정직한 손이었다. 손에 쥐어졌던 명줄이 풀려있었다.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네 살의 아이가 기억하는 순간은 이것이다. 이 장면은 일생동안 수천 번은 반복 재생되었다.
50여 년 전의 사람들은 물과 전기의 친연성, 감전 그리고 삶과 죽음에 무지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된 나는 심폐소생 교육을 받으며 오래 고뇌했다. 혹시, 만약 아버지가 그때 응급 처치를 받았더라면 살아계셨을까. 강력한 심장 자극을 주면 깨어나지 않았을까. 싸늘해진 몸에 뜨거운 피가 다시 돌고, 기적처럼 손을 움직이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되뇌었다.
산 사람을 무지하게 내버려 두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생각은, 내 안에서 평생 지워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음력 4월 보름이었다. 보름달을 바라보면 마음이 껄끄럽고 숨이 찬다. 아버지 제사에는 가지 않고, 절하지 않았다.
물에 들어가면 발바닥부터 굳는다. 나는 수영을 하지 않는다.
민물고기는 구토를 일으킨다. 나는 민물 생선을 먹지 않는다.
나는 물기 묻은 손으로 그 어떤 가전제품도 만지지 못한다. 콘센트와 플러그가 만나는 그 돼지코 부분을 두려워한다. 전기가 무섭다.
나는 프로이트를 신봉하지는 않지만, 그가 해석한 무의식의 세계는 아직도 내게 유효하다는 기분이 든다. 평생 꿈의 밑바닥을 긁고 다니는 근원적인 괴로움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몸이 약해 수술을 많이 해서 예전 같으면 어려서 죽었을 것이기에, 나는 지금의 삶을 덤이라 여긴다. 그 덤은 젊은 아버지가 당신 대신 내게 주신 것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나는 필름 사진처럼 넘겨지는 낱낱의 과거에 마음이 어지럽다. 기억은 흩어지지 않고, 내 안에 아직도 엉겨 붙어 있다. 수레 위에서 덜컹이던 아버지의 손,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젊은 어머니의 기억이 포개진 채 눌어붙어있다. 아직도 선연해서 눈을 뜨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