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

by 이채이

자신의 가방을 가만 들여다본 적이 있는지? 가방 안에는 우리의 삶 조각들이 담겨있다. 조각을 꺼내서 삶을 온전하게 덧칠을 하기도 하고 내게 묻은 오물을 닦아 내기도 한다.


손바닥만 한 파우치에는 더 작은 지갑이 들어있고, 그 안에는 몇 장의 카드와 신분증과 약간의 현금이 들어있다. 자동차 키와 립스틱과 치실이 짝을 맞추고 있다. 가방의 복판에는 여행용 티슈와 시집, 볼펜이 끼워진 메모 공책이 있다.

이런 잡다한 것들을 꺼내서 각을 잡아 하나씩 펴 놓아 본 적이 있는가? 콤팩트 파우더의 동그란 모양, 크기와 색감이 다양한 네모난 것들, 천으로 만들어진 파우치와 금속성의 차키까지 모두 가지런히 펼쳐보았다. 그것은 어머니의 조각보를 닮아 있었다.


품앗이 일로 바쁜 어머니는 새벽부터 들로 간다. 어머니는 혼자 아침을 먹을 어린 딸을 위해 도리소반을 차려 놓으셨다. 그 밥상은 알록달록한 조각보로 덮인 채 매일 아침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소곳하게 씌워진 조각 상보는 아름다움을 생활 속에서 보게 하는 배려 같은 것이었다.


동그란 소반 위에 노란 계란찜과 시락국. 그리고 뚜껑을 덮은 밥. 그 곁에는 솥에서 긁어낸 누룽지가 작은 공만 하게 뭉쳐져 있었다. 혼자 일어난 어린 딸은 조각보를 걷어낸다. 말랑한 누룽지를 씹으면 그 고소함에 잠이 깼다. 밥공기를 열면 식은 김이 방울방울 뚜껑에 맺혀있고 미지근해진 밥은 촉촉했다. 식사를 끝내서 지저분해진 상을 다시 조각보로 덮었다.


어리던 나는 어머니의 조각 상보를 보며, 보자기보다 작은 것이 가진 '가림'의 의미를 알았다. 잡다한 생각만큼 헝클어진 물건을 가방 안에 넣어 정연하게 하듯, 어머니는 상위의 복잡한 그릇을 한 장의 조각보로 감싸서 정돈되고 조화롭게 했다. 보여줌의 아름다움보다 가림의 아름다움이 세상을 온순하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딸아이가 조각 맞추기 게임하는 걸 본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 할 줄 아는 게임이 별로 없지만, 다양한 모양을 꿰맞추는 '테트리스'라는 게임은 해본 적이 있다. 그 게임을 할 때면, 조각조각을 이어 뭔가를 만들던 어머니를 생각나게 한다.


시간제한이 있어 위에서 아래로 급히 떨어지는 조각들을 잽싸게 채우는 그 놀이를 난 지속할 수 없었다. 테트리스와 조각보가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조각보는 테트리스처럼 그렇게 급히 맞춰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자투리 천으로 공간을 채우고 빈 공간만큼의 천을 오려내서 섬세하게 연결하는 그 작업은, 바삐 하기를 재촉하는 세상의 놀이와는 맞지 않았다. 뭔가를 급히 해내는 것이 나의 성정에는 맞지 않는다.


장마철이 되면 시골의 농사는 우선 정지 상태에 들어간다. 그 틈에 어머니는 반짇고리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둔 천을 꺼내서 해진 양말을 꿰매고 떨어진 옷을 수선했다. 나는 처마 끝의 빗방울 고드름을 지겨운 줄도 모른 채 바라봤다. 고드름처럼 길게 매달린 물방물을 난 그렇게 불렀다. 처마 끝 빗방울이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에도, 그 순간을 견디는 자연의 애씀을 보았다. 그 애씀은 겨울엔 '수정 고드름'으로 여름엔 '빗방울 고드름'으로 맺혔다.


감나무에 작은 감이 매달려 있었고 감잎은 종일 빗방울을 받아냈다. 빗물은 감잎마다 잉크를 쏟아부은 듯 초록을 진하게 적셨다. 토란잎을 잘라 와서 물방울을 받으면, 잎 위를 구르는 빗방울은 동그랗게 말려서 영원의 구슬처럼 반짝였다. 나의 놀이는 이런 것이었다. 빗물의 노랫소리를 듣고 싶을 때는 커다란 양푼을 가져다가 빗방울을 받았다. 똑똑거리며 떨어지는 순간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나는 비의 요정이 부르는 노래라 생각했다.


이런 하릴없는 파편들이 모여서 내 유년의 조각보를 만든다. 그 안에는 비의 계절이 있고 어머니의 바느질이 있고 푸른 감잎의 생기가 있다. 세월이 깊어진 나는 잘린 생각의 실을 다시 이어서 부스러진 기억을 꿰맨다. 그것이 행여 내 부끄러운 인생을 단정하게 덮어주는 조각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비의 요정이 부르던 노래를 들으며, 헝겊 인형을 만들어 주던 젊은 어머니가 그리움으로 번졌다. 가을 아침을 물들인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보고픔을 달래야겠다.

*그림은 화가 엄윤숙 선생님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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