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다리 귀신

by 이채이

시골집마다 굴뚝 연기가 얇게 뜬다. 비가 내려 한 겹 더 쌀랑해졌다.

길가에 늘어선 나무들이 골격만 남긴 채 말라가고 있다. 아름드리 벚의 터널이 맨 먼저 잎을 떨구며 앙상해졌다. 가장 먼저 봄을 열기 위해 때 이른 가을을 비운 나무의 메마름이 좋았다. 그 충실한 채비가 고맙고, 질서 있게 시간에 순응하는 것들이 문득 벅차게 느껴졌다.


장터에 들러 팥죽을 먹었다. 새알의 뭉침과 끈기가 몸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새알 하나를 입에 넣으면 붉은 팥죽에 녹아든 벽사의 바람을 먹는 듯하다. 목구멍으로 넘길 때면 새알은 풀어져서 얇은 방패처럼 보호막을 세워준다. 주술의 힘을 믿은 조상의 기원을 내려받은 탓이다.


마을 어귀, 골바람이 일순 머무는 곳에 헛다리 귀신이 살고 있다. 길을 가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때는 바람을 머금었던 총각 귀신이 뒤따라오며 입김을 뿜는 것이다. 귀신의 한쪽 다리는 대나무 빗자루여서 헛다리 귀신으로 불리며, 온전한 다리 하나로 풀쩍 뛰어온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는 순간, 장대처럼 길어지며 감당할 수 없게 커져 버린다. 혹시나 그를 만나거든 고개를 숙이고 잘 관찰해서, 헛다리를 분별해내야 한다. 헛다리를 찾으면 두 팔의 힘을 모아 힘껏 걷어 넘겨야 한다. 그러면 빗자루 귀신은 벌러덩 넘어진다. 버둥대는 틈에 도망쳐야 한다. 다리가 하나뿐인 귀신은 쿵쿵쿵 달려온다. 잡힐라치면 남은 다리마저 걸어 넘기면 된다.


빗자루 총각 귀신은, 두렵고도 매혹적이었다. 초6 겨울 방학 동안 결계를 치고, 단 한 번도 내가 만든 결계를 벗어나지 않았다. 꿈속에서라도 빗자루 귀신을 만날까 얼어붙었다.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커진다는 상상은 끝없이 자라나서 나의 발을 묶어두었다.


화장실에 갈 때도 각별히 주의했다. 뒷마당 사립문도 철저히 단속했다. 대문을 닫아거는 일은 내가 도맡아 했다. 그렇게 밤이 되면 안심이 되었다. 마당 울타리에는 가시가 돋친 상상의 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었다. 뒤 안의 대나무는 한 다리 귀신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기로 약조했다. 이 모든 것은 철저히 비밀이었다. 입 밖에 내는 순간 웃음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기에.


어머니는 팥죽을 끓여주시며 붉은 것이 심장의 피를 지켜준다고 했다. 팥의 붉음과 내 피의 붉음이 심장으로 이어진다는 말에 안도했다.


팥죽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심장이 천천히 물드는 기분이 들었다. 팥죽이 나를 다시 붉게 데워주었다. 그때마다 핏줄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한 수저 한 수저 달게 삼킨 덕에 결계가 단단해졌다. 그 겨울 유난히 팥죽을 자주 먹었다.


이듬해 봄, 나는 가뿐하게 결계를 걷어냈다.


가끔 새알 팥죽이 먹고 싶다. 새알을 씹을 때면 오래된 기억이 씹혀서 웃는다. 국물을 몸에 흘려 넣듯이 천천히 나를 채운다. 오늘처럼 추워지면, 연기 나는 시골집에 할멈을 그려본다. 슬며시 들어가 아궁이의 불을 쬐며, 다시 한번, 나의 소름 돋는 얘기를 꺼내 보고 싶다. 소리 없이 웃으며, 따끈한 팥죽을 저어가며.

keyword
작가의 이전글떠나보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