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내기로 결심했다

by 이채이

터미널로 가기로 했다. 그리움의 손을 꼭 쥐고, 데려간다. 너는 나를 따라다니며 수시로 무너지게 했다. 슬며시 들어와서 턱을 괸 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늘 그런 식이었다.

버스는 연착되었고, 멀리 동해로 가는 버스는 출발 지연되었다.


그리움이 종종 마술을 부렸다. 시끌벅적하게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도 저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본다.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하며 나의 시간을 주무른다.


제멋대로 작동한다. 비둘기를 숨겨둔 모자에선 새 대신 물안개를 꺼낸 적도 있다. 상자에 갇힌 사랑을 절단한 적도 있다. 놀란 나를 향해, 일루젼의 비밀은 발설 금지라며 웃고 있었다.


외로운 순간이면 너는 거울 뿐인 빈방에 들어간다. 한없이 작아지는 궤적을 따라가다 지쳐, 멍하니 앉아있었다. 눈 속 형체가 사라질 때까지, 파고들고 또 파고든다.


의자를 살짝 끌어, 먼 별의 노을을 보았던 왕자를 생각한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남루한 뒷모습을 본다. 앞모습과 뒷모습이 똑 닮아서 놀라버린다. 뒷모습을 보여주지 않기로 다짐한 달을 생각하며, 이해하기로 한다.


기다림에 익숙한 듯이 대합실 의자에 앉아있다. 남해의 멸치 떼가 거대한 그물에 걸려, 떠나지 못한 기억처럼 파닥이고 있었다. 거대한 화면 속에서 물고기는 빛나고 있었다. 그물에서 풀려난 은빛들은 갑판 바닥으로 쏟아지고, 바다를 향해 높이 점프했다. 갑판을 벗어나지 못한 멸치 떼는, 운명처럼, 눈을 뜬 채 소금에 버무려졌다.


뉴스에서 고개를 돌리고, 너는 눈을 감았다.

"기억에 없는 것도 그리움이 될 수 있는 것이냐?"고 내가 물었다.

"동해에는 오징어를 보기 어려워졌다."라고 너는 딴말을 한다.


서두르는 기색이 지극한 버스 기사는 출발지를 동해로 변경한다.

그리움은 손을 놓고, 홀로 버스에 올라 창가에 앉았다. 유리창에 이마를 짓누르며 아이처럼 장난쳤다. 입김을 불어 하트모양 손 그림을 그렸다. 나는 어지럽다.


너를 떠나보내기로 작정한 나의 마음을. 그리움은 종일 나를 붙들고 가을을 더 아프게 할 것임을 알기에. 밀려드는 것이 그리움뿐이라면 괜찮겠지. 짓궂은 너는 저리고 얼얼한 순간을 회상케 한다. 살에 박힌 슬픔까지 욱신거리게 한다. 덧나서 고생했던 상처를 또 찌른다.


'그리움, 너는 혼자가 아니니까 혼자 갈 수 있지?'


지난봄 너는 바닥에 뒹구는 동백꽃을 주워 모았다. 자전거가 짓누르고 간 것을 빼고서도 한 소쿠리나 되었다. 시든 꽃을 거두는 네가 한심하다며 난 한 소리했지. 너는 동백의 영혼을 거두는 중이라고 소심하게 투덜댔다.

가을밤에 네가 꺼낸 동백꽃은 화롯불에서 붉은 연기를 올렸다. 그 냄새가 좋았다.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뜻이야." 네가 말했다.

한가득 낙화한 동백을 주워, 여러 계절을 기다린 너는, 나만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창가에 앉은 너는 시무룩하게 떠나갔다.

그리움이란 홀로 떠나보낼 수 없는 것임을 알겠다. 마음이 헛헛해졌다.

발길을 돌려 걸었다. 오로지 이미지로만 존재하던 것들과 소리로만 남은 것, 네가 흘려주던 향내를 떠올리며 터벅거렸다. 수북한 은행잎을 발로 차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속이 환히 보이는 마을버스에 네가 앉아있었다. 그리움이, 아무렇지 않게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그리움, 너 역시 외로웠구나. 이별은 늘 나만 아픈 건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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