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산다는 마을에 가보았다. 너의 그리움도 거기 있을까 하고, 물어물어 찾아갔다.
은행나무 아래, 남은 마음들이 노랗게 앉아 있었다.
마을 꼭대기 집에서 뛰어 내려오는 나의 그리움이 보였다. 기별 한번 없었는데도 용케 나를 알아보았다. 세상이 그러하듯 그리움도 편애가 심해서, 기억되는 그리움만 살아있다고 했다.
낡은 서랍에서 찾아낸 우표는 세월의 쪽물이 들어서 푸르스름했다. 소인이 찍힌 우표를 조심스레 떼어내고, 책갈피에 눌러두던 오래전 기억이, 허둥대며 달려왔다.
뒤안을 서성이던 옛 추억은 슬며시 마루턱에 걸터앉았다. 두레박을 내려서 시원한 물을 퍼 올리던 여름날, 어머니의 미소가 순간 스쳐 갔다. 널찍한 대야 가득 참외나 토마토 같은 여름 과일이 물살에 서로 부딪히고, 채반 아래 빠지는 물기에 무지개가 쏟아져 내렸다. 어머니가 빛나고 젊었다.
하얀 면발을 숭숭 건져 자식을 먹이던 어머니. 그 미소에는 기쁨이 번졌다. 당신의 배고픔을 자식의 웃음으로 마저 채우고 있었다. 여치의 울음도 풀잎에 눌려 촉촉해지면, 잎새를 밀치고 소란스레 웃는 꽃송이가 희고 또 희었다. 봉숭아를 찧어 올린 손가락은 밤새 무명실에 묶인 채, 잠이 들었다. 손톱 위에 정렬한 붉은 건반은 차분하게 첫눈을 기다렸다.
별들이 손을 잡고 밤길을 건너왔다. 우리는 북두칠성을 찾아 일곱 별을 세었다. 일곱 다음엔, 늘 서로의 이름을 불렀지. 별의 손잡이를 잡고 국자를 천천히 기울이면, 남은 슬픔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너를 잊는 유일한 방법을 기억해 낸 것처럼 잠시 놀란다. 너의 이름은 지워지고 아픔은 무뎌지고 밤은 깊어간다. 지워지기 위해 기다리고 무뎌지기 위해 인내하는 것이 있었다.
너의 그리움은 아직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밤의 새가, 제 이름을 부르며 울어댄다. 시든 꽃처럼, 너의 그리움은 속까지 메마른 듯하다. 만약 너의 그리움과 문득 마주쳤다면, 나는 전생만큼 오래된 기억으로 살았노라고, 아프지 않게 말할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이 변해간다. 변하는 모든 것을 관통하는 변치 않는 한 가지는, 아직도 너를 나의 사랑으로 인정한다는, 그 사실 하나뿐이다.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선 그리움의 마을. 네 그리움의 부재는 한숨 대신 기대감으로, 담담하게 그리워하라는 묵언으로 들린다. 울타리 너머 듬성듬성한 시간은, 아직도 기억을 정리하지 못한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아직 마을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