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업장을 태우는 중이다,
겨울에도 여전히 꽃이 피는 땅, 화개. 사라져 가는 것들을 붙잡지 않는 곳. 그 외진 장터에 그녀가 산다.
방석만 한 좁은 터, 푸석하게 센 흰머리의 그녀가 실타래를 들고 앉아 있었다. 질마재 신화의 신부처럼, 먼지만 겹겹이 쌓인 채로.
오래도록 사람의 파도와 말의 풍랑에 휩쓸려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사람들이 던지는 말 마디마디는, 굽어진 강의 충고 같고, 역류한 바다가 풀어내는 자랑 같기도 해서 아팠다. 등이 시리다는 말은 맘이 시리다로 읽혀 먹먹했다.
사랑하는 남자의 등에 기대 살고 싶었던, 말수가 적은 서울 여자. 자식을 낳고 '알콩달콩'이라는 수줍은 단어를 맘껏 누리고 싶었다. 남자의 손을 잡고 철 따라 꽃을 보고, 바다를 첨벙거리며, 사르르 웃고 싶었다. 귀엣머리를 가지런히 귀 뒤로 넘기던 손끝이 가는 사람. 오직 이 남자 하나라고 굳게 믿고 싶은, 세상 물정 모르는 말랑한 도시 여자였다.
남자가 만든 차 거름망은 마감이 깔끔하고, 종이처럼 부드러웠다. 차를 우릴 때 그녀의 상념은 남자의 고운 체에 걸러졌다. 팽팽한 아름다움은 차 맛을 순하게 하고, 찻잎을 조용히 가라앉혔다. 차에서 대나무 향이 났다.
그녀는 남자의 시간을 팔아 돈을 샀다. 사람들은 소소한 아름다움에 큰돈을 지불하지 않기에, 장터의 삶은 고되었다.
대신 바다를 건너온 바구니를 받아서 팔았다. 거친 대나무 살에 손가락이 찔리고 손이 베었다. 방울진 피를 옷자락으로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피는 붉었고 얼굴은 파리했다.
그녀는 마감이 거친 바구니의 오라기를 끊어내고 있었다. 한 올 한 올 선혈이 피어났다. 그때마다 잡념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잘려 나갔다. 거친 바구니를 종일 손에서 놓지 않았기에, 그것은 구원의 기도처럼 여겨졌다. 집착과 번뇌를 버리고픈 수행자처럼 피가 솟을 때마다, 마음의 업장도 하나씩 소멸하였다.
상춘객들이 흘리고 간 흥이 바람을 따라 떴다 가라앉는 동안, 그녀의 묵언은 간혹 발을 헛디뎠다. 어색한 미소를 따라 시간은 축적되는 것이어서, 결마다 주름은 깊어졌다. 장터에서 젊은 날을 견뎌온 그녀는 굳어버린 돌처럼 입술을 다물었다. 이제 그녀는 미륵불을 기다리고 있다.
도솔천을 천천히 걸어 내려온 부처님이 장터에서 떠돈다. 인간세의 온갖 잡음 안에서 삶의 비애가 바람에 날린다. 시장 복판에 누운 부처님은 재첩국을 얻어 마시고, 은어의 꼬리짓을 칭찬한다. 미륵불을 기다리는 그녀의 소망을 비웃었으나 나무라지 않았다. 길바닥에 뱉어진 욕설에, 배고픔을 달래는 뜨거운 국밥에, 여름을 울리는 풀벌레의 애씀 속에 이미 용화수의 설법은 진행 중이다.
쭈뼛거리던 손님들이 그냥 지나칠 때, 그녀는 혼잣말을 한다.
"다음 생에선 이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고요. 그래서 버티는 거예요."
무덤덤한 말이 한숨처럼 새어 나왔다. 손목의 구슬 염주가 넋두리를 받으며 빛을 냈다.
눈은 커다랬고 속눈썹이 물기로 가득 찼다. 왼손 검지의 골무에는 침전된 시간이 굳었고, 사랑은 시간이 묻어둔 화석처럼, 발굴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가게엔 베트남산 목어가 공중을 헤엄치고, 중국산 목탁이 달처럼 걸려있다. 바구니와 수십 년의 세월이 퇴적되었다. 미끄러운 눈길에도, 바람이 휘파람을 불어 꼬여내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녀의 완고함이 무거워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사라지고, 백열전구 아래 고려의 탱화만이 남아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여승의 기도 속을 지나고 있었음을.
그녀는 배웅하지 않았다. 잇몸을 잠깐 보였을 뿐. 해묵은 미소가, 탱화처럼 얇게 벗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