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달의 계곡을 넘어

by 이채이

사막을 돌아다니는 남자가 있었다.

처음부터 사막에 미친 건 아니었다. 예전엔 네팔이나 인도 접경의 산간 마을을 돌며 사람을 담았다. 그는 고장 난 카메라로 세상을 담는 일이라며 자조하듯 웃곤 했다. 그는 지도에 없는 길을 걸어갔고, 고장 난 카메라로 마음을 담아 찍는 일을 했다. 그런 말도 안 되고, 논리조차 비껴 나간 그의 사진을 보면 가슴이 저리게 아팠다. 사랑스럽고 때론 성스럽고, 추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사람의 흔적이 없는 곳을 찾아서 떠났다. 그의 사랑이 떠난 시기와 거의 겹쳤을 것이다.

어딜 가나 삶은 존재했고 그 곁에는 이를 증명하듯 사람이 살았다. 잃어버린 사랑이 잊힐 때까지, 완연한 고독 같은 사막으로 들어가야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어린 왕자> 한 권을 품에 안고 잠든 적도 있었다.


그는 겨울의 아타카마 사막에, 꽃이 피는 땅이 있다고 했다. 달빛이 언덕에 내리면 모래바람에도 아랑곳 않는 수백만의 꽃이 동시에 피어난다고 말했다. 그곳에 가려면 황금빛 달의 계곡을 넘어야 하고, 무엇보다 사막에 내리는 대설의 축복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사막에 무슨 눈이 내리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견딜 수 없이 그리우면, 그곳에 기어서라도 갈 것이라고.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그가 편지를 보내왔다. 사진 한 장만 담겨있었다.

사막의 언덕배기에 노랗고 붉은, 때로는 하얀 작은 꽃들이 끝도 모르게 피어있었다.

사진의 뒷면에는 '아타카마 데저트 블룸'이라고 휘갈겨 있었다.


그를 감쌌던 회오리는, 설원을 달리고픈 사나운 짐승의 발자국마저 지운다.

바람이 구름을 타고 느리게 움직이는 곳, 기갈에 시들은 자들이 하늘의 은총을 받아 마신다. 쏟아져 내리는 빗물에 마른땅은 숨을 헐떡이다가, 마침내 씨앗 하나를 깨웠나 보다.

필름 없는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던 그는, 더는 견딜 수 없었나 보다.


아타카마 사막에 가고 싶어서, 위치를 찾아봤다. 칠레의 길쭉한 땅 중간 어디쯤이었다. 이곳은 내가 가볼 수는 있는 곳일까? 수년에 한 번 핀다는 데저트 블룸. 비가 내리면 미친 듯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기적을 볼 수 있을까.

사막이 얼마나 간절해야 제 몸의 껍질을 벗기고 붉은 상처를 낼 수 있을까.


모래알보다 더 메마른 나의 마음에도 비가 내리고 온기를 불어넣으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밤은 사심을 키운다.

밤은 생각을 끌고 다니다가 기억의 씨앗을 온 마음에 흩뿌린다. 흩어진 것 들은 홀씨처럼 날아 여기저기를 헤맨다.


나의 눈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 나의 눈물이 꽃 한 송이 피워낸다면, 이미 오래전 사막을 다 덮었을 터이다.

내가 사랑했던 것들, 내가 기다려온 모든 것은, 결국 당신에게 닿아있다.


사막을 수놓은 꽃송이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내일의 일기예보가 틀리기를 소원한다.

사막을 지나던 먹구름이 웬일인지 떠나기를 거부하고 주저한다고, 산꼭대기에 걸린 구름이 기어이 넘어와 방울방울 비를 뿌린다고 흥분하는 기상캐스터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수년의 깊은 잠에 빠진 모든 씨앗이 깨어나고, 햇볕을 쬐던 전갈이나 도마뱀이 놀라서 춤을 추는 광경을 보고 싶다. 햇빛에 그을린 사막여우가 풀쩍풀쩍 뛰어다니길. 기도는 비를 만들고, 비는 꽃잎을 섬기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그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


손가락이 먼저 글을 쓰고자 한다. 이는 모래땅에 피어나는 꽃 무리를 그리는 인간의 마음이라 여긴다.

종일 목소리가 나직한 남자 가수의 노래를 가득 채워 들었다. 내 몸에는 그 음성과 그가 부른 노래의 흔적으로 울림통이 팽팽하다. 마음에 가득 담은 것들은 압축되어 저장된다. 오래오래 응축되어 남아있다. 사막의 씨앗처럼 오래 살아있다. 촉촉하게 비가 내리고, 노래가 시처럼 스며들면 아타카마에도 꽃들이 흔들리며 살아나겠지.


사막 위에 펼쳐진 꽃바다, 남자 가수의 노래, 아직도 아픈 나의 가슴이 원하는 것.

이것이 그리움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사진 트립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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