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사를 한다.
이사를 할 때면, 삶의 껍질을 한 겹 벗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남겨둔 자리에 눌어붙은 시간의 흔적들이 드러나고, 이삿짐센터가 내려놓은 견적서 위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떠나보낼지 조용한 심문이 시작된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 일곱 번의 이사를 했다. 집을 옮길 때마다 늘어가는 물건과 버려지는 물건 사이에서 오래 생각했다. 그건 가져갈 것인가 버리고 갈 것인가의 고민이 아니었다. 이 물건을 얻기 위해 들였던 노력과 그 물건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묻는 마음. 이삿짐의 분류를 강요받은 순간마다 내가 붙들던 기준이 있었다. 그것은 필요 여부가 아니라 아름다움의 가부였다.
타인의 눈에 불필요해 보여도 소유하는 나만의 것들이 있다. 대개 하찮아 보이는 것들이지만 소중한 것이다. 커피를 마실 때, 커피와 잔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늑한 분위기의 공간에서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다. 나는 물건을 통해 편안함과 아늑함이라는 감정을 사는 것이다. 좋아하고 아끼는 것으로 매만져진 곳. 그곳에서 마시는 한잔의 커피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 삶의 대부분이 그러했다.
내게 이사는 물건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를 재설정하는 계기라고 여긴다. 삶을 조화롭게 하는 것을 나는 아름다움이라 이름 붙였다. 그것에는 질서가 있다.
아무리 소중해도, 이사를 할 때면 버려지는 것과 남겨지는 것이 생긴다. 떠나보냄의 아쉬움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은, 새로운 공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만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다.
백 년이 넘은 쁘띠 등은 소파에 걸터앉은 아가씨처럼 환하게 웃는다. 결이 부드러운 파인 드레서는 바지런한 손길로 먼지를 털어낸다. 창문을 닫다 깨뜨린 계절 접시는, 그날 남편의 배려를 기억하게 한다. 가족의 식탁이나 혼자 마시는 차 한 잔에도 나는 오래된 그릇을 준비한다. 그 낡음이 가진 포근함은 사물 안에 사는 나의 마음이다.
혹자는 말하더라. 새집에 가면서 왜 굳이 낡은 것들을 데리고 가느냐고. 나는 수긍할 수 없다. 물건 자체보다 어울림에 더 가치를 둔다는 것이 나의 대답이다. 내게 인연을 지속하는 판별식은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나를 오래 그윽하게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사람의 인연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곁에 머문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닿아 행복한 시간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당신과 나의 마음이 교차하며 지속되는 순간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아름답다.
흘러가는 인연은 외로운 사람의 창문을 두드려, 그 마음에 살포시 안길 것이다.
세상 속에서, 당신에게도 머물게 하고 싶은 아름다운 것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