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무렵에 들이닥친 돌풍이 대문을 심하게 흔들었습니다. 쌀랑해진 공기에 재채기가 절로 나왔습니다. 덜컹이는 유리 너머로 낙엽을 실은 차들이 바삐 집으로 돌아갑니다. 부엌의 불을 켜고 가스를 당겨, 주전자에 물을 끓입니다. 여름 볕에 붉어진 옥수수수염과 잘 여문 가을의 결명자까지 넣어 끓여둡니다.
말린 시래기를 꺼내서 물에 불리고, 얼린 풋팥을 넣은 밥을 안칩니다. 솥 안의 김이 빠지자 구수함이 퍼집니다. 당신이 좋아하던 누룽지를 살며시 뭉쳐볼까 합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불빛은 더 환해집니다. 사각사각 연필을 깎으면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 떨어져 나옵니다. 편지를 쓸까 하다가 그 마음을 내려두었습니다. 밤이 무섭도록 고요해집니다.
밤사이 대문을 두드리던 바람이 비를 몰아왔습니다. 바람은 골목마다 지키고 서서 낙엽을 쓸어 모으고 있었습니다. 놀이터 건너편의 유치원 담장까지 말끔해졌습니다. 아이들이 뜀뛰기를 하던 징검다리도 비 세수를 해서 한결 산뜻해졌습니다. 어둠마저 잠든 시간, 누군가의 기척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내 안에 아직 미소가 기댈 자리가 남아 있어 다행입니다.
출근길에 나설 때, 커피 하우스에 들러 향긋한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달걀을 배달하는 아저씨에게 모닝커피 한 잔을 선물했습니다. 그의 발걸음이 경쾌해졌고 세상은 커피의 온도만큼 더 따뜻해졌습니다.
갓 나온 소금 빵이 달달한 버터 향을 풍기며 바삭하게 고소했습니다. 소금 빵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와사삭 낙엽을 깨무는 소리가 났습니다. 가을을 닮은 빵을 구운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 작은 집에서 아침의 행복을 구워내는 일이 이토록 쉽다는 것에 놀라고 감사했습니다.
내 몸에 스며든 그 와사삭거림을 오래 기억해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가지 사이를 출렁이던 잎들은 모두 밑동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긴 겨울밤 아랫목에 웅크려 들던 밤의 아이들처럼, 가을의 잎들이 거기에 쌓여 밤새 소곤거릴 것입니다.
나무를 올려다보는 순간 문득, 세상이 서서히 비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헐벗은 겨울나무에 꼬마전구를 달아 주었듯, 겨우내 빈 가지마다 그리움이 가득 매달릴 것입니다. 계절이 건너가는 극단의 밤에, 외로움이 외롭지 않도록 첫눈이 내려올 모양입니다.
화단 가득한 겨울 배추가 보랏빛으로 씩씩합니다. 오는 눈을 용감하게 맞이하고 겨울 이불을 꺼내 덮을 기세입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간밤의 비바람이 눈을 맑게 하고, 흐트러진 정신마저 거두어주었음을 압니다.
오늘 밤엔 늦도록 책을 읽으며 고독하지 않으려 합니다.
깎아둔 연필로 다정한 편지도 써보려 합니다. 오늘은 첫눈이 내릴 것 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