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

by 이채이

가녀린 야옹 소리가 들렸다. 두 마리 새끼 고양이가 엄마를 잃은 모양이다. 세상 물정 모르고 무방비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 사이 족제비가 물어갈까 조마조마하다. 연민은 문을 열어 아기들을 받아 주었다.


고양이의 가르릉은 먼 전생의 통로를 여는 암호문 같다. 고양이는 집안을 뒤적거리며 구석진 틈을 찾는다. 그리곤 사라진 날을 두드린다. 그곳 어딘가에 기억 못 할 우리의 인연이 있다기에, 나는 궁금해서 참을 수 없다.

고양이는 밤이 되면 투명 구슬을 토해내서 자주 들여다본다는데, 거기엔 오래전 결별한 사랑이나 일찍 세상을 뜬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더 많은 그리움을 뭉칠수록 구슬은 투명하고 커진다.


한밤에 구슬을 들여다보면, 지난날 설익은 사랑이 낭자해서 눈을 감게 된다. 아프고 부질없는 시간들이 구름처럼 몽글댄다. 과잉된 사랑이 소주잔을 따라 흘러넘치고, 밤은 취한 채 무릎을 꿇었다.


아침이면 고양이의 구슬은 눈알로 박혀 반짝인다. 눈물이 그렁한 눈을 볼 때, 사랑하는 법에 서툰 내가 당신을 눈물 나게 했음을 기억해 낸다. 나는 다시 아파온다. 내가 좀 더 숨죽여 기다렸더라면 하는 마음에 엄숙해진다.


밤의 회상 속에서 나는 당신께 용서를 빈다. 침묵하던 입술이 세월의 강을 인정하고, 당신의 땅에 안착했기를 빈다. 그리고 오늘의 당신이 부디 행복하기를.


못난 나는 들고양이의 눈에 찍힌 몇 장의 사진으로, 슬픔의 잔뼈를 추려낼 뿐이다. 당신에게 저질렀던 차가움에 몸서리친다. 견딜 수 없는 시간을 견뎌낸 사람은 가볍게 미련을 삭제하고 떠날 수 있음을, 이제야 어렴풋이 배운다. 당신의 시간도 그처럼 흘러서, 남은 미움 없이 잦아들었기를 속 좁은 나는 기도한다.


길 잃은 고양이를 만나면, 당신의 전생을 만난 듯 쓰다듬어 주면 좋겠다. 그리고 밤이면 구슬을 닦고 또 닦아서, 내가 당신을 사랑했던 순간까지 모두 잊어버리면 좋겠다.

길을 가다 우연처럼 당신을 만나면,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러하듯 고개를 갸웃하며 웃을 수 있게. 처음 당신에게 사랑이 닿았던 그때처럼, 그렇게 다시 사랑하려 한다.


고양이의 무표정한 얼굴처럼 비밀의 문이 열리는 순간에는, 우리 서로 모르는 체하기로 하자. 나는 들뜬 마음을 감춘 채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을 꿈꾸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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