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그린 은밀한 지도처럼

by 이채이

"무슨 꽃을 좋아하세요?" 첫 만남에서 당신은 물었다.

무엇을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굳이 ‘꽃’이라고 특정해 묻는 그 말에서 나는, 어디까지 답해야 할지를 잠시 가늠해 보았다. 호감의 깊이만큼 대답의 층위는 다르기 때문이다.


"장미... 좋아하세요?"라고 당신은 재차 물었다.


그런데도 나는 쉬이 대답하지 못한다. 노랑 장미라 답하면 당신은 노란빛의 장미 한 송이를 떠올리겠지만, 내가 그리는 건 릴케의 묘비명에 나오는 순수한 모순이고, 친구의 정원에 핀 헤리슨즈 옐로우의 그 장미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일률적으로 재배되어, 묶음으로 유통되는 그 노랑 장미가 아니다.


나는 어머니의 장독대를 은은한 분홍으로 에워싸던 작약을 잊지 못한다. 산 아래 밭을 가득 채우던 참깨꽃의 종소리를 다시 들어보고 싶다. 그 모든 풍경 속에 깃들었던 사람들과 마음이 휘청이던 그 시간을 기억한다. 그래서 어떤 꽃을 좋아한다는 말은 늘 조금 복잡하고 어렵다.


한때는 좋아하지 않던 아이리스도 그렇다. 친구가 두어 뿌리를 캐서 보내주어 확독가에 심어두었는데, 해가 지나자 알뿌리가 실해지고 꽃대가 오르기 시작했다. 이른 봄이면 아이리스가 목을 빼고 나를 기다린다. 그것은 이제 꽃이 아니라, 멀리 사는 친구가 건네는 안부 같다.


도라지꽃을 좋아하게 된 것도, 바삭한 도라지 꽃전을 처음 먹었던 날에 있다. 그날 프라이팬 위에서 꽃은 간지럼을 타듯 보랏빛으로 지글거렸다.


말을 아끼듯 숨을 깊이 모으고 있는 매화, 터지기 직전의 봉오리를 좋아한다. 이렇게 말하면 그건, 은은한 달빛 차에 꽃을 띄워 마시고 싶다는 의미다. 여러 해를 함께 하다가, 운 좋게 달빛과 매화가 만나 피어나는 순간을 함께 한 사람만이, 내가 말하는 ‘좋아함’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사랑하는 것을 나의 방식으로 말하기까지는, 언제나 긴 설명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이렇게 공들여 이야기하는 이유는, 어떤 물음에 답하는 방식 자체가 곧 나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경험을 깊이 공유하고픈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법이다. 과연 나의 어떤 부분까지 보여줄 것인가를 결정하며 상대를 대한다. 모두에게 내 삶을 지탱한 유도선으로 안내할 필요는 없으니까. 좋아함과 사랑, 그리고 사람과의 모든 관계는 결국, 서로가 허락하는 깊이만큼 드러난다.


‘좋아함’의 근원은 언제나 사람에게서 온다. 대개,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된 순간을 떠올리면 그 옆에 누군가가 있었다. 벌은 색을 쫓아 꽃에 앉는 것이 아니라, 꽃잎에 새겨진 선명한 유도선을 따라 날아온다. 아이리스는 봄내 웅크린 채, 곤충들을 위한 은밀한 줄무늬 지도를 그려두었다. 꽃잎이 그린 작은 지도처럼, 활주로에 그어진 선들이 거대한 비행기를 정확히 착륙시킨다. 오늘 내 기억의 활주로에도 '당신'이 추억의 유도선을 연장하고 있다.


"음… 제가 좋아하는 것은요…"


입술 끝에서 맴돌던 말이 천천히 내려앉는다. 그 순간, 나는 당신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다.

마음을 다해, 되도록 친절하게 내가 겪은 시간을 조심스레 건네고 싶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묻고 싶어진다.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오늘, 당신의 소상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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