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은 완벽한 죽음에서 아름다운 색을 뽑아낸다.
동백은 마지막 인사를 연습하듯 툭툭 잎을 털어낸다. 죽은 가지는 온기를 잃고 잘린다. 봄날의 샛바람에 동백은 때 이르게 낙하했다.
꽃을 한 바구니 주워 담고 썩은 줄기마저 소중히 잘라 온다.
응달에 웅크린 꽃들이 천하게 웃고 있었다. 선창가 술집 여주인의 립스틱처럼 빨갛고 진해서 괜스레 무안했다.
그럼에도 나는 동백으로 물들고 싶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서도, 그 붉음까지 통째로 간직하고 싶었다.
나는 한솥 가득 동백꽃을 끓인다. 끓인 꽃잎에 옷감을 담그면 은은한 분홍이 배어난다. 옷감을 펴서 줄에 널면, 빨랫줄이 가늘게 떨렸다. 그 가녀린 진동이 낯설어서 눈을 감은 채 서늘해진다. 요람처럼 흔들리던 공기는 어느새 붉어져, 하늘의 막을 밀어 올리며 노을의 심지에 불을 붙인다. 노을은 바람이 남긴 속마음을 천천히 태우고 있다.
도자기 같은 초록을 지탱하던 나무는 한 철 붉은 꽃바다에 몸을 떨군다. 마른 가지가 재로 사그라지면, 동백은 그 잿물 속에서 분홍을 더 깊게 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색을 만들라는 동백의 임무는, 남긴 재로 완성되고, 그 끝은 부드러운 보랏빛에 닿는다.
뜨겁게 우려낸 꽃잎을 차로 마시면 마음마저 달콤하게 바래진다. 붉어진 마음은 당신을 향한 사랑으로 번지고, 말 못 할 사랑은 시가 되어 저물도록 흘러간다.
선암사에서 만난 비에 젖은 겹 동백은 흰 얼굴 위에 립스틱을 발라 놓은 듯했다. 빗물에 번진 붉음이 더 아릿해져서, 나는 종일 눈을 떼지 못했다. 오목눈이가 곁에 와서 건조한 가슴으로 두어 번 울다 갔다.
겹 동백은 낙화의 순간조차 아름답다. 몸을 비틀어 아리따운 춤을 추고, 치마는 공기를 감아올리듯 빙그르르 퍼진 채 떨어진다. 무용수는 잠시 숨을 멈추고, 그 심장이 뛴 자리마다 바람의 흔적이 남았다.
멀찍이 떨어진 꽃을 주워 가슴에 댄다.
사랑이 가슴 안에서 파르르 떨리고, 아쉬움은 한 톤 낮은 분홍으로 마음을 다독인다. 떨어진 꽃은 내게 기대어, 눈치 없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아쉬움에 뒷걸음치는 나를 향해, 담장 너머 뒤꿈치를 들고 선 당신이 꽃처럼 가만히 피어 있다.
사랑과 아쉬움은, 그렇게 겹겹이 스며, 내 마음에 물결쳤다.
*사진은 '행복'님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