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을 받고 시무룩했습니다. 당신의 안부가 미지근해서, 나에 대해 소상히 말하기 멋쩍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계신 곳의 날씨가 당신만큼 궁금할 리 없는데도, 계속 딴 얘기만 하십니다. 관심 없는 말들에 감춰진 마음을 읽고자 했으나, 나의 모난 마음으로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떠난 이곳은 어느새 늦가을입니다. 초입부터 심상찮던 계절은 지금껏 비상사태처럼 이어지고 있습니다. 산허리에 걸려있던 안개가 아침을 따라 도시로 내려옵니다. 거리에 짙어진 뿌연 것들이 버스의 눈을 가리고 발을 걸어 전진을 막습니다.
안개는 이내 도시를 점령했습니다. 16층까지 타고 올라온 안개는 허락도 없이 저의 뺨과 귀를 만집니다. 무례함이 싫어서 헛기침하면, 이내 시야가 흐려지고 오래된 기억 속으로 나를 데려가 버립니다.
기억은 흐릿하게 살아나는 법이라 자주 헷갈리게 하고 제멋대로입니다. 그 안에 당신을 향한 달큼한 순간들이 있기에 마냥 미워할 수만도 없습니다. 슬픔 가운데 기쁨이 얇게 겹쳐져, 안개처럼 성냄조차 우유부단해지는 것, 이건 오래 나를 괴롭힌 병입니다.
때늦은 데이지가 피어 마음을 졸였습니다. 노곤한 가을볕을 틈타 서너 송이가 철없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머지않아 된서리를 맞고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시들어갈 것을 생각하면 애틋해집니다. 쥐똥나무 가로수엔 거무스레한 검버섯이 번져서 잎들이 한숨을 내쉽니다. 그 위로 아픈 낙엽들이 소복이 쌓여갑니다.
밤이면 산 위로 몰려든 안개가, 새벽이면 마을 어귀를 살금거립니다. 새벽까지 이어진 개 짖는 소리에 놀라 주저앉은 자리마다, 남겨진 이슬만 훌쩍입니다.
창가에 서서 이 모든 사태를 바라보는 나는, 하루하루가 허무해집니다. 간신히 답장이라도 받는 날에는 기지개를 켜듯 마음이 살아나고, 허공을 떠도는 전파에 당신의 목소리가 걸릴까 싶어 머리카락조차 자르지 못합니다. 온몸의 촉수가 땀에 젖는 날이면 그리움조차도 기다려집니다. 그런 날은 불면이 맞이하는 아침처럼 공허합니다.
가끔 우울하고 가끔 설레기도 합니다. 정해지지 않은 감정의 파동이 달거리 주기처럼 마냥 돌아옵니다. 나는 배가 아픈 여자처럼 지릿한 통증을 겪어냅니다. 공원의 단풍이 붉어졌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나의 저림이 그보다 붉다는 것을 매일 아침 확인합니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나무들은, 기다림 없이 우수수 미련을 버렸습니다. 자유를 얻은 잎들이 공중을 날아갑니다. 일생에 한 번쯤 꾸어도 좋을 꿈이라 여겨, 가슴이 훈훈해졌습니다.
울그락붉으락하던 나무의 성정은 갱년기의 남자를 닮았습니다. 당신의 숲도 당신을 닮아 붉으락푸르락 할 테지요. 다독여줄 사람 하나 없이, 종일 흔들리지 않기를, 밤의 안개가 당신의 뜨거운 머리를 식혀주길 바랍니다.
나는 이 그리움을 끝내기 위해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적막 속에서도, 살아갈 힘을 찾아 내 안을 더듬습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당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