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테두리 안에 있다. 나는 나로 싸여 살아왔기에 나 너머의 것으로 결코 들어갈 수 없다. 내가 누리는 공간 안에는 제각각의 영역이 있다. 내가 만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 또한 그러하다. 나는 '그러하다'가 가진 동어반복의 긍정적 회피를 즐긴다. 당신에게 다가가고 싶을 때 당신의 경계는 더욱 확실해 짐을 느낀다. 우리가 파고들 수 있는 깊이와 접근할 수 있는 거리가 선명해진다.
당신이 나에게 올 때, 움찔 뒤로 물러서는 행위는 테두리의 경계를 진하게 그어 넣는 의식에 가깝다. 자판기의 캔 커피를 꺼내 내게 건넬 때, 금속 고리를 손수건으로 닦고 '딸깍' 열어서 건넬 때조차 그렇다. 당신이 건네는 것이 단순 카페인이 아님을 알고, 당신의 행동 속에서 온기를 담은 마음 씀의 예감이라는 걸 나는 안다.
나는 당신의 행동이 불러올 미래의 경계에 대해 생각한다.
멀리 빌딩의 윤곽이 흔들리고, 도로 위를 기어가는 자동차의 불빛이 천천히 흘러간다. 그런 풍경을 스쳐 보내며, 당신이 건넨 커피는 내 안에 타고 흐른다. 당신이 '딸깍'하고 캔 커피의 입술을 열었다. 하지만 허물어진 것은 알루미늄의 캔이 아니라 입술을 따라 스며들 마음임을 안다.
당신이 경계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마음을 더해 열어버린 판도라의 캔처럼, 나는 따듯한 희망을 잠시 품어 보는 것이다. 커피가 달고 뜨거워서, 당신을 보고 웃는다. 허물어져 흐르는 것은 캔 속에 담긴 무엇이 아니라 당신과 나 사이에 생겨나게 될 그 어떤 것임을 예감한다.
몸에 밴 손끝의 다정함이 마음을 가볍게 터치할 때마다, 당신은 나의 경계를 녹여낸다. 수선스럽지 않고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잔잔하게 스며든다면 좋겠다. 그리고 차분하게 기다려 주면 좋겠다. 캔의 입구를 따라 흐르는 유동의 액체가 사람의 마음을 적시듯이, 내 안에 갇힌 마음도 온기를 타고 스스로 출구를 찾을 때까지.
속마음이라는 것이 껍질을 깨고 나올 때, 바닥에 가라앉은 사랑을 가장 먼저 구조해 내기를 바란다. 그 사랑은 오래 침잠해서 단단히 굳어 있다. 펄에 빠져 오도 가지도 못할 나를, 상처로 뒤범벅된 나를 왠지 당신이 망각의 물로 씻어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맴돈다.
'심장에 얼음이 박힌 사람에게는 망각의 눈물이 필요하다'라고 당신이 말했다. 나는 그 뜻을 알듯도 하여 말없이 긍정했다.
이 가을이 나무에게 붉음을 요구한다. 나무는 가을에게 새 들어 살고 있기에 계절 사용료를 내야 한다. 연체에 시달리는 나무는 단풍 든 잎을 당장 털어 준다. 더 붉어진 시간까지 얹어서 낸다.
붉음을 간절히 요구하는 가을의 속내는, 뜨거운 날을 연장하라는 신의 묵언처럼 들린다.
성당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내려온다. 기도하는 수녀의 속눈썹에 기쁨이 매달려 흐른다. 이제 시작될 겨울에게 사랑이 그리움으로 번지기를 소망한다.
가을은 젊음에게도 지난 삶의 임대료를 요구할 것이다. 얼마나 간절히 뜨거웠는지, 얼마나 많은 심장을 허물었는지 물을 것이다. 그 대답은, 붉게 물든 흔적으로 증명될 것이다.
오늘도 연체에 시달리지 않도록, 당신은 사랑의 걸음으로 내 하루를 포근하게 덮어 온다.
이제 경계의 테두리를 내려서며, 나는 당신에게 조금 더 머무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