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은 완벽하지 않다

by 이채이

'완벽'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은 이데아의 세상에서 살고 있어서, 좀처럼 인간의 땅에 놀러 오지 않는다. 완벽은 바람과 구름이 머무는 즈음에 기거하면서 떠돈다. 나는 그 뒤를 오래 쫓아왔다. 완벽이라는 삶의 이름을 좇는 동안은, 타민족의 언어를 말하는 사람처럼 낯설고 불편했다.


서원에 들어섰을 때, 투명 화병에 담긴 키 큰 해바라기 같은 이를 보았다. 키가 컸고 짤막한 단발머리였다. 목소리는 물처럼 한줄기로 뿜어지다 끝이 두세 갈래로 흩어졌다. 굵은 소리 하나는 서너 개의 음률 다발로 묶여 있다가 섬세하게 갈라져 여성의 음색으로 수렴했다. 독특한 색상을 입힌 음악분수 같았다.


목이 길었다. 목이 긴 사람은 신화 속 초월적 인물을 상상케 한다. 남들보다 긴 공기의 통로를 지나 울리는 성대는, 더 오래 떨렸다. 그녀는 담장 밖을 바라보며 식물처럼 고요히 앉아 있었다.

움직임이 없었다. 그녀는 그녀이면서 그녀가 아니었었다. 트랜스젠더였다.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무엇 보다 그녀의 글씨가 훅하고 마음에 꽂혔다. 자모의 순서를 어겨가면 쓴 것이 분명한 것이었다. '쓴다'라기보다는 아이가 처음 글자를 그릴 때처럼 분방한 것이었다. 종이 냅킨에 무질서하게 흩어진 글자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웅성대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노트의 줄에 맞춰 보기 좋게 쓰는 통념을 깨부수는 그런 것이었다.


지나가던 교감 선생님이 지우개를 들고 다가와, 지우고 단정하게 다시 쓰라고 지적할지도 모르겠을 그런 글자.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교감 같은 사람은 없었다. 안심이 되었다. 잔잔한 바람이 불면 하나의 잎이 흔들리듯, 펜을 쥔 그녀의 손만 정중동(靜中動)의 움직임으로 포착되었다.


비슷한 글자를 헷갈리는 난독증 아이처럼 글자는 요동치고 있었다. 아니 어쩜 그녀에게는 난서증(亂書症)이 있는 게 아닐까? 줄 공책이 무색하게 그녀의 글자는 지나치게 삐뚤 하고 크기가 일정하지 않았다.

ㅂ을 쓸 때, 기둥을 먼저 세우고 가로 막대를 가로지르지 않고, ㅁ을 먼저 쓰고 한참 나중에 두 개의 뿔을 추가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난 그 난만함 안에서 평화와 질서가 느껴졌다. 차분했다. 오래 사용하지 않은 문갑에 내려앉은 먼지처럼, 숨죽여 적막했다.


난 오랜만의 자유를 느꼈다. 하나의 성만 가지고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나의 여성과, 두 가지 성을 다 경험한 후에 쟁취한 그녀의 여성을 두고, 그녀의 여성성이 더 완벽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다.

완벽이 이데아의 이상이라면, 성(性) 또한 각자가 꿈꾸는 하나의 이데아일지 모른다.


여성성을 정의하고 기준을 세워 비교하는 한, 여성은 ‘여성다움’을 요구받으며, 그 이데아로 얽매이게 될 것이다. 그런 시선은 물리적인 차별을 넘어서 심정의 깊은 곳에 먼저 닿는다.


그녀의 빼뚤한 글자에서, 분수처럼 갈라지는 목소리에서, 목이 길어 관조하는 듯 보이는 외모에서, 나는 신의 뜻을 생각해 보았다. '완벽'이라는 이데아의 형상을 조물 거리던 조물주가 잠시 손을 놓은 틈에, 색채의 신이 남성을 입혀 이 땅에 내보낸 이가 그녀가 아닐까 싶었다.


완벽의 이데아는 너무도 완벽주의자라서, 그 누구도 완벽할 수 없는 공평함을 주었다. 모두가 원하지만 아무도 가질 수 없는 성의 이데아. 여성인 나도 남성인 당신도, 자신의 여성을 살아가는 그녀도.


이데아를 벗어난 완벽이라는 말은, 완벽하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 굳이 그 무엇에서도 완벽을 추구할 필요가 없음을 이제 깨닫는다. 결국, 이 땅의 완벽은 늘 불완전하므로.

*그림은 '소담'님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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