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밤새 말을 걸었다.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새벽까지 메마르게 불렀다.
나는 잠을 설쳤고 눈에 실핏줄이 터져 퀭해졌다. 그리움을 좀 혼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움, 너의 집은 어디인지 물었다. 너는 잊힌 기억의 다락방에 산다고 했다.
얼마 전 역주행 한 차에 치여 죽은 그리움이 있었다고, 장례도 제대로 치를 수 없을 만큼 아픔이 커졌노라 말했다.
먼지 앉은 다락에 거하던 그리움은, 끝내 영정 사진을 찾지 못했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도 없었음을 고백했다. 만약 형체를 가지고 직접 찾아가려 했더라면, 수십의 얼굴을 한 그리움 때문에 신원 증명서를 발급받느라 하루가 다 갔을 것이라고 했다.
사랑처럼 그리움은 객관화된 표준 판별 도구가 없어서, 그 깊이나 세월을 측량하기 힘들다.
어떤 이는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바람에 자주 추억의 시절로 돌아가야 했다. 한동안 추억의 그리움 옆에서 넋두리를 들어주다 보면 어느 순간 퍽퍽한 현실로 돌아왔다. 털썩 주저앉은 사람 곁에서 오래 공허했다.
치매 노인의 그리움은 지독하다. 그는 현재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렸다. 그림을 그릴 때 하나의 소실점을 두고 스케치를 완성하듯, 기억은 그 점처럼 사라지는 것이어서 붙들 수가 없었다.
밤이면 딱 정해진 그 순간으로 돌아가, 그리움을 앉혀놓고 소주를 부어대는 남자가 있다. 술에 취해 정신을 차리고 보면, 또 그 병실이라고. 치매인 에게 그리움은 기억의 도돌이표 안에 갇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움이 상실 속에서도 살아 있는 것이 놀라웠다.
죽음을 직면하는 순간에 경험한다는 필름이 스르륵 출력되는 장면은 그리움이 만든 것이다.
때로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도록 한다. 이러한 미세한 영점 조정이 늘 필요하다고, 그래서 그리움은 밤새 시간과 공간을 편집하고 오래전 기억을 만나 종종 인터뷰한다.
말이 입술에서 새어 나오지 않고 뇌의 흐름에 기대듯, 그리움도 말이 되어 나오지 않고 뇌수 안에 고여 있다. 어떤 그리움은 변화를 두려워해서 뇌 속에 들어가 문을 닫아버린다. 안에서 걸어 잠근 문을 열게 하려고 밤새 어르고 달래곤 한다. 어젯밤의 그리움처럼.
그리움은 기억이라는 세포에 갇혀 나오지 못한다. 나조차도 당신에게 갇혀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밤잠을 설치게 한 그리움을 더는 혼내지 못할 것 같다.
그리움은 견디기 힘들다.
나는 지금, 그 견딤의 순간을 겨우 통과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