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남은 인생 전량(全量)

by 이채이

하루살이는 제 인생 길이를 알지 못한다. 이 곤충이 제 목숨의 양을 알기까지는 하루가 필요할 것이다. 밤의 귀뚜라미도 울음의 유효기간을 알지 못한다. 그 또한 가을 한 철이 사그라드는 마지막에야 생명의 양을 알게 된다.


하루살이보다 오래 사는 이만이 하루살이에게 그 물생(物生)의 짧음과 덧없음을 논할 수 있다. 신은 말하고 있지 않을까. 인간의 삶은 그다지 길지 않다는 것을.

인간의 평생은 수북하게 쌓인 보고서처럼 성실하게 기록되는 것이 아니다. 세월이 뭉텅 뭉그러진 채 몇 토막의 기억으로 보관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정말로 팔십 년의 시간이 필요하기라도 한 걸까?


만약 우리에게 남은 수명이 배터리의 잔여량처럼 표시된다면 어떨까? 내 마음의 잔량이 조금 남아 있었는데, 당신과 다투고 상처를 주는 사이, 그 소중한 일부를 깎아 버렸다. 후회를 하는 동안 또 조금씩 줄어든다면 어떨까.


반대로 내가 당신을 만나 위로하고 사랑하는 동안, 심폐소생을 받은 사람이 숨을 되찾듯 서서히 잔량이 차오른다면 어떨까. 그런 기적을 만난다면...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내 목숨의 양과 질을 늘리는 것임을 알게 된다면, 사랑이나 위로 같은 것들이 좀 더 흔해지지 않을까?


'오늘'이라는 단어는, '어제'가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내일'의 얼굴이었다. 내일의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죄수에게 '오늘'은 전 재산을 바쳐서라도 사고 싶은 간절함의 가치다. 그에게 하루는 자신에게 남은 인생 전량(全量)이다.

그가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라는 말을 한다고 해서 그 진심이 전해질까. 진심이라는 말은 말하지 않을 때 더 신뢰가 가는 아이러니의 성정을 가졌다.


"이건 진심이야."라고 말해버리는 순간 이전의 말은 진심에서 단숨에 멀어진다.

진심은 기업어음과 닮았다. 믿음이란 담보가 사라지면, 언제든 부도 처리된다. 맘먹고 달려든 진심이라는 말 앞에서, 지혜로운 자는 말보다 행동의 무게를 살핀다. 진정성의 여부는 행위의 지속으로, 신뢰의 양을 측정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에 더욱 감사하려 한다.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당신과 마주하는 소소한 일상을 늘리려 한다. 행복한 순간의 기억을 조금 더 확장하려 한다. 그러한 행동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적극적 삶의 개입임을 믿기 때문이다.


인생의 남은 날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미움과 다툼으로 소모해 버린 많은 것들을 원상 복구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진심을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면, 말이 아니라 마음의 무게로 다가서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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