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한 봉지만큼 간절한

by 이채이

버스가 왔다. 눈이 내렸고 길은 미끄러웠다. 까치 두어 마리가 보드 블록 위를 톡톡 뛰다 사라졌다. 횡단보도 건너 붕어빵 노점에서 따끈한 추억이 구워지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김 나는 대화를 나누곤 한다.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발을 동동이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를 보며 평범한 일상이 머무르고 있음을 알았다.

붕어빵을 굽는 손길이 바쁘다. 나의 기억도 바삐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바스락거리는 눈이 내렸다.

사람들은 가난했고, 젊음은 더욱 값없이 취급받던 겨울이었다. 국가부도의 해였다.


우리가 오래도록 간직하는 것은 어떤 순간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를 향해 달리던 마음의 기울기다. 버스가 와서 사람들을 싣고 떠났다. 사람들의 머리칼에 내려앉은 눈도 데려갔다. 모자를 벗고 착잡한 얼굴로 밖을 내다보는 이의 시름까지도 함께여서, 버스는 언제나 만원이었다.


창가에 앉은 누군가가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하트를 그렸다. 손가락으로 그린 하트는 지그재그로 갈라져 있었다. 그의 마음이 날카롭게 벌어진 듯 보였다. 입김이 사라지면 그림도 사라지기에, 그는 애써 숨을 모아 찢어진 하트를 살리고 있었다.


삭발에 가까운 짧은 머리카락 사이로 부스럼이 떨어졌다. 허옇게 마른 인간의 비늘들이 흘러내렸다. 인간이 어류에서 진화했다는 말이 어쩜 사실일지도 모르겠다고, 그의 어깨에 내려앉은 비늘을 보며 생각했다.


어느 겨울밤, 그 사내가 붕어빵 노점 앞에 서 있었다. 어류에서 진화했을 것이 분명해 보이던 그는, 물고기 모양의 풀빵 앞에서 오랫동안 고심했다. 천 원을 내고 슈크림 세 개와 팥 한 개를 샀다. 임신한 아내가 좋아한다며, 부스럼 같은 미소를 조심스레 떨구었다.


버스가 왔으나 그는 버스를 타지 못했다. 아내에게 가져갈 붕어빵을 가슴에 품고 남자는 뛰기 시작했다. 모자를 눌러쓰고 비늘을 흩날리며, 남자는 붕어빵 한 봉지만큼 간절한 사랑을 안고 뛰었다.


살면서 지나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버스를 탈 것인가 붕어빵을 살 것인가를 두고 사내는 고민하지 않았다. 가난한 남자는 붕어빵을 아내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으로 기꺼이 한 봉지만큼의 사랑을 선택했다. 나는 그 마음을 그리워한다.


나는 버스를 타지 않았다. 눈을 맞으며 마냥 걸었다. 겨울이 가져올 쓸쓸한 순간은 노점의 귤이나 군고구마 한 봉지의 따끈함으로 지워진다. 아픔이 희미해지고 그리움이 대답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나의 그리움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버스비를 아껴서 애정을 담던 그 남자의 마음에서 왔다. 가슴에 품고 뛰던 시린 행복에서 왔다. 추운 날은 한 번 더 안아주고, 벌어진 마음의 틈을 염려해 준다. 나는 그 남자의 소망이 다 이루어졌으리라고 믿었다.


나도 붕어빵을 샀다. 나의 소망도 다 이루어질까 싶어서. 손바닥 한가득 번져오는 온기가 마음 깊은 곳까지 타고 들어온다. 그 온기를 잃을세라, 나는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는 곳을 향했다. 하늘에는 노른자 같은 달이 선명했다. 눈 날리는 겨울에 노란 달이라니, 이상하리만큼 따뜻한 풍경이었다.


겨울은 누군가에게 돌아가는 계절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버스가 와서 서고, 그 문이 열릴 때 당신이 내리면 좋겠다.

누군가를 향해 기울던 따뜻한 이 마음이 당신의 기억에도 머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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