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향이 가득하다.
향나무의 몸통을 쓰다듬으면 겹겹이 접힌 세월의 주름이 손끝으로 거칠게 밀려온다.
그 주름 사이에는 말없이 숨어 있는 오래된 상처들이 산다.
향나무는 아픈 딱지를 떼어내지 않는다. 지우는 대신, 그 위에 새살을 조심스레 겹친다. 상처는 목질의 안쪽에 숨죽인 채 누워, 나무의 또 다른 ‘시간’이 된다. 나무의 ‘시간’은 세월을 발효시켜서 가둔다. 머지않아 상처만큼 깊어진 향이 몸의 새살로 돋아 퍼질 것을 안다.
향나무는 아주 조금씩 두꺼워진다. 서늘한 껍질 아래 스며든 냄새는 숲의 공기를 밀도 있게 만들고, 바스라지는 그 향은 다른 존재들의 호흡 속에 은근히 배어든다. 상처가 쓸린 방향으로 더 깊고 그윽함이 풍긴다.
나는 그 향을 맡을 때마다, 상처를 지우려고 애쓰는 인간의 마음을 안타깝게 떠올린다. 그러나 아픔을 잊기 위해서 그 쓰라린 기억까지 데리고 살아가는 나무의 생존 방식에서 성숙함을 배운다.
지워지지 않는 사람의 말, 떠나지 않는 얼굴,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발아를 기다린다. 모두 지우려고 애쓴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음을. 아픔조차 함께 삭히며 사는 것도 괜찮다고 말하는 나무를 보며 깨닫는다.
향나무의 껍질은 추위를 벗겨내며 혹한을 산다.
나무는 혹한을 지우는 대신 품는다. 감추는 대신 기억한다. 버리는 대신 향기로 변환한다.
인간의 마음도 그렇게 성숙한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위에 덧입혀진 새로운 의미가 서서히 그 상처의 이름을 바꿀 뿐이다.
상처가 나면 흉터를 걱정한다. 절개하고 봉합해서 흔적까지도 지우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향나무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상처를 없애야 아름답다’는 말이 실은 반만 맞다는 사실이다.
잘 자란 나무는 아픔 없이 곧게 자란 나무만을 말하지 않는다. 온갖 상처로 아물다 터지더라도 시간을 견딘 순간들을 온몸에 간직한 나무만이 근사한 아름드리나무가 된다.
사람도 그렇다.
아픔 없이 자란 사람은 철없어 보인다. 철없음은 타인의 삶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기적인 인간이 된다. 상처까지 안고 가는 사람은 영혼을 단단하게 한다. 아픔을 기억함으로써, 타인을 배려하는 두꺼운 심지를 만든다.
고통을 헤쳐온 이의 견딤은, 차곡차곡 쌓인 내면의 훈장처럼 삶이 빛으로 번진다.
상처를 그대로 품어낼 것.
그럴 때라야 삶은, 또 다른 아름다움에 도착한다.
*사진은 '생에 대한 애착'님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