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차의 대답

by 이채이

글이 막히면 나는 시인의 집에 찾아간다. 글보다 사람의 다정히 있는 곳. 군고구마 한 봉지를 안은 채 무작정 간다. 잎이 다 떨어져 버린 후 잎눈만 잔뜩 매단 은행나무를 올려다본다. 국화는 서리를 맞아 잎이 갈변했다. 하지만 꽃만은 아직 생기를 잃지 않아 다행이었다.


언젠가 시인이 말했다.

'나는 나로 태어나서 왜 평생 나를 찾아 헤매는 걸까?'

우리는 이 말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나로 태어난 내가 왜 나의 모습으로 살지 못할까. 왜 우리는 진짜 나를 찾아 평생을 헤매는 것인지에 대해 오래 이야기했다.


진짜 내가 따로 있다면 지금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가 아니라, 누군가의 기대에 반응하며 만들어진 사람이었구나.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 목소리보다 먼저 상대의 표정을 살폈다.


오후의 외출에서 돌아온 시인은 따끈한 모과차를 내왔다. 나는 은은한 빛의 모과꽃이 내뿜던 봄의 찬란함을 기억하고 있다. 봄밤에 더욱 어울리던 향이 붉게 터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모과의 울퉁불퉁한 생김새와 노랗게 익은 과육이 풍기는 살냄새 앞에서 진정 '나다움'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모과가 사과가 되려 했다면 아마도 자신의 향을 먼저 버렸겠지. 그렇게 얻은 달콤함은 사과와 비교되어 오래가지 않았을 테고. 과육이 단단한 모과를 얇게 채 썰어 꿀에 버무리면 새콤하고 달콤함을 간직한 모과청이 된다. 겨울날이면 이렇게 불쑥 찾아와 '나다움'이 무엇이냐고 묻는 나에게, 시인은 모과차를 건네며 말 대신 미소로 답한다.


한 잔의 모과차를 사이에 두고 생각한다.

비교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비교 없이 살아가는 것이 나다움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고흐가 끝내 자신의 필치를 버리지 않았던 것처럼, 나의 하루가 온전히 나로 물드는 일상이기를 소망해 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기로 한다.

* 사진은 '아쿠아네'님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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