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의 잎은 도자기처럼 매끄럽다. 동백의 잎은 지지 않는다.
겨우내 꽃을 피워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동백이 겨울에 피어나기 시작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엷은 한숨 같은 벚꽃이나 살구꽃과는 다른 시간을 산다는 점이다. 동백은 겨우내 피어나기 위해 온 계절의 햇빛을 잔뜩 모아 잎에 가두었다. 단 한 점도 소실되지 않도록 매번 코팅해 둔다. 겹겹이 방출을 차단해 두었다.
나는 동백의 붉은빛은 그 두텁고 매끄러운 잎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햇빛을 먹고 녹여서 잎의 가장자리마다, 가을부터 준비하는 꽃눈에 가득 채워두었다고 여긴다. 꽃이 없는 계절이면 바람을 맛보고 비에 흠뻑 젖는다. 순간의 기억을 응축해서 머잖아 피어날 꽃눈에 쏟아붓는다. 그것이 잎의 자랑이라 여긴다.
나는 봄의 꽃도 좋아하지만 겨울을 견디는 동백을 더 좋아한다. 눈 속에 묻힌 꽃을 보는 것은 언제나 설레고 시리다. 눈 속에 얼굴을 내민 동백을 그려 색칠할 때, 화가는 눈의 흰색을 종이의 여백으로 처리한다. 나는 그런 화풍을 좋아한다. 두껍고 거친 질감의 종이를 눈으로 삼아 채색하지 않는, 오로지 잎과 꽃만을 진하게 칠하는 그림을 좋아한다.
그 그림을 보면 동백나무가 토해낸 푸르고 붉은 핏자국이라는 생각이 더 선명해진다. 피는 생명의 꽃처럼 맺혀 있고, 상흔처럼 흘러내린다. 푸름이 어찌나 농밀한지, 세상에 푸른 피가 있다면 그것은 동백의 잎일 것이라 믿게 된다.
겨울의 동백이 아름다움과 위험을 동시에 품은 까닭은 붉고 푸르고 하얀, 색조의 견딜 수 없는 조화에 있다. 파랑과 빨강만으로도 살려는 의지와 죽음을 동시에 매달 수 있기 때문이다.
수행 중인 사람의 마음 색은 하얗겠지만, 살고자 몸부림치는 이의 마음은 붉었다 푸르기를 오가며 흔들린다. 그 요동은 아침의 출근길에도 있고, '괜찮다'는 말속에도 남아 있다.
바닷가 어느 섬엔 지금쯤 동백이 피어나 바닷물을 받아 마시며 더 붉어졌을 것이다. 눈이 가득 내린 여백에 머문다.
* 사진은 ‘해비꽃’님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