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머릿속이 찌릿해서 잠을 설쳤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귀 주변에 복잡하게 얽힌 신경에 염증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머리까지 저릿저릿한 신경통이 온 것 같다고 했다.
뇌 신경통은 괴롭다. 신경은 예민해서 스트레스에도, 염증에도 쉽게 반응한다. 나는 신경을 안정시키는 약을 처방받았다.
약국을 나오며 신경 씀에 대해 생각했다. 몸이 아플 때, 마음은 가장 먼저 반응한다.
자신의 일에 관여하기를 거부할 때 우리는 “신경 쓰지 마”라고도 하고, “신경 꺼”라고도 말한다. 이미 신경을 쓸 만큼의 감도로 서로에게 익숙해진 사이에서 그 말은 배려가 아니라 칼이 된다.
그 칼은 마음을 찌르고 도려낸다. 그것은 타인의 감각을 삶에서 밀어내는 폭력에 가깝다. 나를 도려냄으로 당신의 고통이 덜어진다면 더 말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나는 조용히 물러선다. 우리가 필요할 때마다 신경을 켜고 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맥없는 상념에 잠긴다.
뇌에 지속되는 고통이 이어지자 오래 감춰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당신을 아프게 했던 날. 담장 벽을 짚고 겨우 서 있던 당신에게, 정중한 듯 냉랭했던 나의 말이 다시 내게 돌아와 꽂힌다.
약을 한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셨다.
날카로워진 신경을 안정시키고 염증을 억제하는 알약까지. 이 알갱이들이 나의 몸에 미쳐 고통이 사그라들고, 마음속까지 스며서 신경을 찌르던 가시 같은 말까지 그 기억까지 모두 진정시키면 좋겠다.
나는 계절이 바뀌고 사람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나, 당신의 표정에서 읽혀지는 감정을 그냥 무시할 수 없다. 또한 태풍이 쓸고 간 도시의 가로수가 무사한지, 연약한 꽃들이 꺾이지는 않았는지가 당신의 안부만큼이나 마음에 걸린다.
신경다발 속에서 고분고분하던 시냅스도 찬바람을 앞세워 멀리 날아가는 기러기 떼 앞에서는 좀처럼 진정하지 못한다. 나는 세상의 이치를 따라 움직이는 것들에 먼저 감응하는 사람이다. 나무와 풀을 보며 웃고 울며, 침묵하는 시간 속에서도 봄의 기대를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나의 애씀은 변해가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음으로써, 내 삶의 균형을 지켜내고 있었다.
진료를 하던 의사의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
“신경이 예민한 편이시네요.”
나는 그 말을 병명으로 받아 적지 않았다. 그건 나의 흠이 아니라, 내가 이 세계를 견디며 살아가는 방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는다. 그 말은 종종, 아무것도 느끼지 말라는 부탁이 아니라 당신의 감각을 내 삶에서 거두어 달라는 요구에 가깝기 때문이다.
신경이 쓰인다는 것은 아직 관계 안에 있다는 뜻이고, 아직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다.
아프더라도, 예민하더라도 나는 그 연결을 끊기보다는 감각을 지닌 채 살아가는 쪽을 향해 걷는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내가 신경을 쓰더라도, 너무 신경 쓰지는 마.”
이 말을 나 자신에게 건넬 수 있게 된 뒤로, 나는 조금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