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과속하지 않고, 정상 속도로 깊어지고 있다. 고목에 매달린 감을 따지 않아서 새들의 겨울이 풍족하겠다.
감을 먹는 새들이 예뻐서 사진을 찍으면, 하늘의 퍼렁물이 뚝뚝 떨어질 듯하다. 그 사이로 검은 줄기가 선명해진다. 검고 퍼런 사이로 서리 맞은 감이 빼곡하다.
겨울의 한가운데서 감꽃을 기대하는 일은 계절감 떨어지는 시답잖은 일일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상상해 본다. 감꼭지 사이에 숨어 있던 진주알 같은 꽃들이, 어떻게 저토록 붉은 생을 완성했는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고목이 주렁주렁한 까치밥을 내어놓듯이, 나이 든 나도 저만큼 풍성하게 내어줄 수 있을까.
나는 새를 좋아해서 가까이서 새를 보고자 한다. 겨울이 되면 새들을 꾀어낼 요량으로 베란다 철제 선반에 홍시를 올려둔다. 멀리서 인간의 집을 염탐하던 새들이 주변에 모여든다. 붉은 홍시 한 알을 보고 철없는 작은 새들이 먼저 온다. 여린 부리로 쪼아 한 입 먹고 날아간다. 까치나 까마귀가 온다. 느긋하게 채반에 앉아 먹는다. 감을 쪼은 다음 하늘을 향해 부리를 들고 흔들어 삼킨다.
덩치 큰 새들은 두려움 없이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예전에 진흙으로 만든 과자를 먹던 까마귀가 있었다. 딸이 진흙 과자를 만들면 주위에 몰려들어 먹거리인 양 쪼아대던 녀석이 있었는데, 나를 찬찬히 바라보는 눈빛이 꼭 닮았다. 진흙 간식은 아니지만, 홍시 덕분에 새들을 맘껏 보았다.
산책길에 잣 방울을 주워온다. 잣 방울 벌어진 틈 사이로 알땅콩을 촘촘하게 꽂아 넣는다. 베란다 선반에 묶어 고정해 두면 땅콩을 먹으러 새들이 온다. 짝을 지어 여러 마리가 날아와 콩알을 빼먹는다. 땅콩을 빼내서 입에 물고 날아갈 때 가족을 먹일 사랑이 새들의 본능에 스며있는 것이 다행이라 여긴다.
견과류가 촘촘하게 박힌 잣 방울을 들고 숲에 간다. 다람쥐가 오르락거리는 나무의 밑동에 놓아둔다. 멀리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청설모나 다람쥐가 내려와 그것을 물어간다. 온 가족이 내려와 협심하여 끌어간다. 그런 날은 배부른 잔치를 벌이면 좋겠다.
겨울이 깊어지면 새들도 숲의 어린 생명들도 배가 고프다. 겨울은 가진 것을 움켜쥐는 계절이 아니라, 남겨둔 것으로 서로를 건너는 시간이라 믿는다. 감나무 고목이 넉넉히 감을 내어주었듯, 나는 새와 청설모를 위해 먹거리를 챙긴다. 직접 만든 잣 방울과 홍시를 함께 나눈다.
껍질이 있는 땅콩을 붙여서 동그란 리스를 만들려 한다. 중간중간 솔방울이랑 알밤도 끼워 만들려 한다. 정원의 큰 나무에 걸어 두면 땅콩 리스 소문을 듣고 숲의 이웃들이 모여든다. 껍질 땅콩을 까서 볼 가득 채워 넣은 사랑스러운 다람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마음이 먼저 넉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