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첩의 글을 달여

-새벽 글쓰기

by 이채이

글을 써 본 사람은 안다.

책 속의 쓴 물을 뽑아 마시고 가장자리에 남은 희미한 단맛의 글을 써내는 어려움을.

백 일을 동굴 속에 갇혀 마늘과 쑥만 먹으며, 간절히 소원을 빌던 이들의 후손이 작가임을 안다. 단 한 줄기 빛도 허용하지 않은 채, 제 안에서 뿜어지는 빛에만 의존하여 견딘 자만이 누리는 기쁨이 무엇인지 안다.


컴컴한 굴속의 생명은 두려움에 압사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을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시간은 늘 숨을 참는 일에 가깝다. 고요히 앉아 끊임없는 침묵을 받아들였을 것이고,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눈을 감고 투시했을 것이다. 미간에는 영성의 눈이 열리고, 그곳으로 스며든 눈물을 삼키며 견뎌냈을 것이다.


나는 새벽 다섯 시에 불을 켜고 노트를 펼친다. 캄캄한 새벽에 글을 쓸 때면, 태초의 동굴에 갇혀 작가로 살기를 소망하는 한 마리 짐승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밤은 새벽으로 이어진다. 겨울의 어둠은 짙어서 밀어내려 애써도 좀처럼 옅어지지 않는다. 그럴 때면 나는 깊은 동굴에 거하는 역사 이전의 사람이 되어, 그 시간을 써 내려가는 상상을 한다. 풍어의 소망을 바위에 새기고, 불의 흔적만이 삶이던 시절을.


홀로 견디는 시간이 값지다는 것을 잘 안다. 골방에 갇혀 커피 한 잔을 친구 삼아 쓴 글이 위로의 눈물을 만든다. `

당신이 글에서 만나는 위안은, 고독의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은 이의 담담한 마음이다.


산보하듯 걸으며 차분차분 생각이 정리되면 좋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홀로 걸으며 생각을 추스른다. 떠오를 듯 말 듯할 때는 천천히 걷고, 답답함이 가슴께까지 차면 달린다. 걷는 동안 나의 내면은 공허한 우주처럼 비어 있고, 그 틈마다 별들이 박힌다. 빛나는 별인 줄 알았다던 개똥벌레의 마음이 되어 노래하며 걷는다. 걷고 달리고 노래하는 흐름은 자연스러워서 그 매끄러움에 기대어 글을 쓰려한다.


나는 매일 지쳐 드러눕고 비틀거린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쓰다 지치면 눈이 시려 뒤척인다. 산책길이 건네준 매끄러움의 결을 타고, 당신의 마음에 다가가기를 시도한다. 나는 리드미컬하게 자판을 두드리며 심안(心眼) 이 글로 살아나기를 기다린다.


외로움을 기본값으로 가진 사람들이 오늘도 적막을 넘어서는 치유의 글을 쓴다. 약을 한 첩 달여 먹는다고 고질병이 금세 낫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첩의 약재 같은 글을 정성으로 달인다.


*그림은 'SLBEE'님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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