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와 스피노자가 만나는 밤하늘
어떤 별은 하늘에 있고 어떤 별은 사람의 마음에 있다. 밤하늘의 별이 고흐의 마음에 내리던 날, 별은 시공의 흔적을 데리고 그의 그림 속으로 스며들었다. 고흐는 차별 없는 시선으로 별을 포착했고, 소실점 없이 표현했다. 그의 밤하늘에는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시선이 없다. 하늘을 채우는 별 하나하나를 개별자로 존중했기 때문이다.
고흐의 밤하늘은 수적(數的)으로 빈곤하다. 그날 밤의 별을 다 셀 수 있을 듯하다. 그의 하늘에는 큰 별이나 작은 별 중요한 별과 중요치 않은 별의 구분이 없었다. 천문학자를 흡족하게 할 만큼의 별자리도 그려 넣지 않았다.
별은 하늘에 있었지만,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의 세상은 그에게 끝내 닿지 못한 곳에 가까웠다. 하늘을 동경하는 자가 별을 세듯, 별을 그리는 자는 삶을 동경하는 법이다. 온 힘으로 살아내고 싶었던 인생이 서른일곱이라는 숫자에 멈췄다.
나는 스피노자를 읽으며, 고흐가 바라보았을 대자연의 별을 생각했다. 밤하늘은 '영원'이라는 어휘를 생각나게 한다. 그 이유는 반짝이는 별의 시간 때문이다. 별빛이 건너오는 시간은 인간이 끝내 살아 낼 수 없는 것이어서, 그 앞에서 우리는 그것을 영원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수십억 광년 전에 출발한 빛과 내가 만나는 순간, 눈을 통해 먼 원시의 시간과 현재의 찰나가 겹쳐진다. 이때는 찰나 속에 영원이 담기는 순간 같다. 스피노자의 신과 고흐의 별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중심 없는 우주, 그러나 모두가 신의 일부인 세계. 대우주를 신의 근본 원리로 깨친 스피노자나, 신의 일부를 화폭에 옮긴 이나, 그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주체 못 할 시간은 영원이나 마찬가지다.
고흐가 그린 밤하늘의 별엔 눈물이 고여 글썽인다. 그 무렵 별이 흔들렸다는 역사적 기록도 땅이 뒤틀렸다는 보고도 없었지만, 화가의 캔버스로 내려온 별들은 아스라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의 눈에 맺힌 눈물이 망막에 렌즈를 덧씌우고 굴절되어 흩어졌다.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던 고흐는 사이프러스 나무 창가에 오래 서 있었다. 고흐 병실의 창 너머로 새겨지는 별들은 모두 동등한 존재로서 빛나고 있었다.
한 세기도 더 전의 프로방스나 오늘의 이곳이나 사람은 온전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누군가를 소실점으로 삼아 제 삶의 멀고 가까움을 재고 있지는 않은가.
고흐의 밤하늘에는 소실점이 없다. 그것은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를 바라보는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