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충고

by 이채이


책이 한마디 던졌다.

"인간적으로 책 좀 그만 쌓아."


사르트르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더듬더듬 읽어나가던 중이었다.

"무슨 뜬금포야? 안 그래도 어렵고 힘들어 죽을 맛인데."


그러자 책이 책상 위의 책을 좀 보란 듯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저거 다 언제 읽을 거야? 어디 보자, 아이고 책상 위에만도 수북하다. 너무 많지 않아?"

나는 가뜩이나 이해가 안 되어 반복해서 읽던 페이지를 덮었다.


"근데 책을 이해는 하고 읽는 거야? 아님 벽돌을 수집하는 거야?"

나는 책이 던진 벽돌이라는 말에 뜨끔했다.


잘 알고 있다.

책을 많이 쌓는다고 지혜가 쌓이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한 권을 어떻게 사유하고 질문하는가라는 것을.


"넌 아무리 병행 읽기 한다고 해도 말이지, 칸트 두 권은 몇 달째 내려놓고 겉 지도 거들떠보지 않았잖아."

"그건.... 그 책은 어려워서 그렇게 쉽게 시작할 책이 아니야. 그리고 내가 꼭 읽겠다는 마음으로 올려 둔 거라고. 다짐하듯이..."


책이 실실 쪼개며 비웃듯이 말했다.

"그래? 칸트는 쉽게 시작할 책이 아니라서 그대로 두고, 또 레비스트로스는 쉽게 끝낼 수 없어서 그냥 두는 거야?"

"....."

변명은 치사할 것이기에 나는 입을 닫았다.


"그러면서 <혼모노>는 왜 받아왔데.... 간식이 필요해?"

나는 이때다 싶어서 대거리했다.


"야, 너 책 주제에 책을 그렇게 무시하면 안 되지. <혼모노>는 간식이 아니라 소설의 흐름을 공부하고 싶다고 하니까.... 그리고 너, 성해나 작가 차별하면 안 되지. 박정민 작가가 '넷플릭스 뭐 하러 보느냐 성해나 읽으면 되지'라고 말한 거 몰라? 요새 핫하다고."


발을 까딱거리며 팔짱을 낀 채, 책은 기가차다는 듯 한마디 했다.

"난 차별 안 해. 차별은 네가 하는 거겠지. 잘 생각해 봐. 네가 최근에 시집이나 소설을 어떻게 대했는지."


듣고 보니 최근엔 장르별 책차별이 좀 있었다. 물론 책상이 어지럽기도 했고.

흐흠. 헛기침을 하고 주섬주섬 책을 정리했다.


책을 대하는 태도는 곧 나를 대하는 태도라는 말이 기억난다. 건성건성 대충 흘려 읽는 마음으로는, 삶의 중요한 순간도 놓치고 만다.


책이 책꽂이의 책 한 권을 빼들더니 말했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읽는 것도 좋은데, 괜찮은 책을 서너 번씩 반복해서 읽는 건 어때? '한 권 더'에 연연하지 말고 반복해서 읽어봐. 옆에서 보는 내가 딱하다."

조금은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맞는 말이다.

좋은 책 한 권을 반복해 읽는 것은, 지식이 아닌 ‘사유의 근육’을 기르는 시간임을 난 잊고 있었다.

잠시 생각했다. 하루에도 수백 권씩 쏟아지는 신간들, 다 읽을 수도 없고 다 읽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중요한 건, 반복하고 사색하며 내 것으로 완전히 녹이는 것. 그렇게 완벽하게 독서해 본 적이 있던가.


책상 위 수북한 벽돌이 아닌, 책 한 권이 내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사유를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책이 내 존재 속에 뿌리내리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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