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는 마음

by 이채이

사이언스 다큐에 수리부엉이가 나왔다.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는 어둠 속 사물을 정확히 본다고 했다. 바위 절벽 끝, 시선이 훅 트인 곳에 둥지를 튼 수컷은 눈비를 맞으며 낮을 견딘다. 한낮의 침묵은,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처럼 조용하다.


밤이 되면 사냥을 나선다. 2m가 넘는 날개는 소리 내지 않고, 부드러운 털로 덮인 발은 바람 소리까지 흡수한다. 수리부엉이가 밤의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소리 없는 비행 덕분이다.


고요한 활공을 보고 있으면, 서둘러 쓴 문장이 왜 흐트러지는지 알 것 같다. 침묵 속에 오래 머물지 못한 사유들, 마음속에서 한 번 더 섞일 시간을 갖지 못한 문장은 자주 미끄러진다.


은밀히 날아가 날카롭게 먹이를 움켜쥘 때, 그 짧은 순간의 정확함은 한 편의 시 같다. 기승전결을 고루 갖춘 완벽한 서사로 다가온다. 나는 화려한 필치를 소망하는 것이 아니다. 글감이 생각의 실타래에 잘 감겨있다가 글을 쓰는 순간 풀려 나오기를 기다린다.


글감은 이미 와 있는데, 문장은 아직 내려앉지 않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수리부엉이의 아름답고도 냉철한 사냥을 떠올린다. 글은 서두름의 문제가 아니라, 내려앉을 자리를 아는 데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수리부엉이는 예리한 시선과 소리 없는 밤의 날개로 메추라기나 쥐를 잡는다. 어미 부엉이는 먹이를 찢어 새끼들에게 건네고, 새끼들은 새들의 다리와 발톱까지 모조리 삼킨다. 통째로 삼키는 모습을 보면 부엉이의 욕심이 과해 보이지만, 소화 후를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남길 것은 남기고, 버릴 것은 차분히 내보낸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글도 이렇게 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을 대하는 내 마음도 그러한지, 잘 씹어 소화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대로 쌓아두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보고 들은 세계를 급히 옮겨 적기보다, 내 안을 한 번 통과하게 두는 것.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은 가라앉히고, 남길 것만 남겨 문장으로 내보내는 일. 수리부엉이의 몸속 화학공장처럼 내 사유가 저절로 정리되고, 차갑던 세계가 내 안의 온도로 바뀌어 나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이란 바로, 차갑던 세계를 내 안의 온도로 바꾸어 내보내는 일이다.

* 사진은 대구뉴스 '최창호 기자' 기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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